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모(59)씨는 최근 구청으로부터 ‘각종 세금을 인터넷으로 공지받고 납부할 수 있다’는 인터넷지로(EBPP)서비스 안내 공문을 받았다. 이씨는 어떤 서비스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본 뒤 구경만 했던 컴퓨터를 직접 배우기 시작했다. 매달 말일마다 은행 창구 앞에서 장표고지서를 들고 기다려야 했던 불편함을 떠올리며 이런 서비스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했기 때문이다.
EBPP는 납부자가 유무선 인터넷상에서 각종 공과금 및 요금 청구내역을 확인하고 전자적 결제수단을 통해 바로 납부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다. EBPP 가운데 특히 인터넷 고지 서비스는 이제 생활속으로 깊이 파고 들고 있다. EBPP는 이처럼 일반에게 새로운 금융서비스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산업측면에서는 아직 갈길이 멀다.
◇EBPP 서비스 현황=EBPP서비스는 대금결제 편의성, 비용절감, 금융기관의 효율적인 점포활용 등에서 탁월한 효과를 인정받아 지난 2000년대 초부터 주목을 끌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만 해도 EBPP를 도입한 개별 징수기관들이 잇따라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또 군소 솔루션 제공업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현재는 금융결제원(인터넷지로), KT(빌플라자) 등이 눈에 띄는 EBPP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솔루션기업으로는 한국인터넷빌링, 앳누리, 네오빌 정도가 전문업체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규모도 추산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총지급 결제수단 중 EBPP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0.01% 미만으로 추정돼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금결원 장진성 연구원은 “전문업체들이 고지에 이어 결제서비스에 치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개별 징수기관 등도 이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가시적 시장활성화는 아직 2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이 문제인가=가장 큰 문제는 EBPP 관련업체들과 금융기관과의 제휴가 부진해 대다수 사이트들이 전자고지업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지와 납부가 일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개별적인 고지서비스만 이뤄져 사용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매번 납부할 수 있는 요금종류가 적은데다 통합고지가 이뤄지지 않아 매번 서비스 사이트를 방문해야하는 등 불편함도 있다. 실제로 도시가스 회사가 e비즈니스 차원에서 EBPP서비스를 도입했지만 등록자가 고작 2∼3명에 불과해 서비스 제공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다보니 EBPP서비스에 대한 투자도 힘든 실정이다. 비용대비 효과면에서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청구업체(빌러) 입장에서도 이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신재득 앳누리 사장은 “EBPP서비스의 성장가능성을 쉽게 말할 때가 아니고 무조건 열심히 마케팅을 할 상황도 아니다”라며 “결제 자체를 하고 싶지만 청구업체들이 아직 결제서비스를 원치 않아 고지서비스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고 말했다. 납부서비스가 병행되지 않으면 고지만으로 사용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시장 성장도 지켜봐야 하는 셈이다.
◇대안 및 전망=EBPP의 확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공부문의 활용이 증대돼야 한다. 이 점에서 지난해 11월 전자정부의 공식출범으로 분리 운영하던 국세청의 국세통합시스템, 경찰청 범칙금 관리시스템 등이 국가재정정보시스템으로 통합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5월 관련서비스를 선보였던 우정사업본부가 본격적인 EBPP 통합관리자로 나선 것도 서비스 활용 확산에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장진성 연구원은 “별도의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납부까지 할 수 있는 e메일 기반 EBPP서비스 확대 등 다양한 서비스가 나온다면 시장확대도 노려볼 만하다”고 예상했다.
EBPP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밖에 서비스 자체가 금융권, 청구업체, 일반 고객 등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전문업체들의 기업규모도 건실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관련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하다 보니 산업활성화가 더디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욱 네오빌 사장은 “통신회사와의 자본유치 혹은 인수합병 등을 통한 기업규모 확대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