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어느 설문기관에서 국내 여성과학기술자의 활용이 저조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남성 동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남성 동료들은 여성과학기술자에 대해 대체로 ‘조직 내 융화, 체력, 행정능력, 지도력, 창의성’ 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달 ‘여성과학기술인 지원정책연구’ 공청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보면 정작 여성과학기술자 당사자들은 이에 거의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화 설문에는 필자도 응한 적이 있다. 당시 질문 내용이 심히 불쾌해 질문항목에 대한 근거를 되물었다. 설문조사를 대행한 질문자는 당황하며 상당수의 여성과학기술자가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여성과학자들의 활용을 늘리려는 여러 제도나 법률이 제정되면서 가장 타당한 근거로 강조되고 있는 점이 바로 ‘여성의 창의력’이다. 최근의 설문조사에서도 대부분의 여성과학기술자는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았다.
이밖에 지적된 다른 점들은 기본적으로 성(性)과 관련이 없는 개인별 차이라는 주장이다.
남성과학기술자라고 해서 누구나 창의성에서부터 지도력·행정능력·체력·조직 내 융화까지 모두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보다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여성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성 동료들은 여성과학기술자들에 대해 지나친 편견을 갖고 있는가.
지구상에서 한국 여성들만 특히 모자란 것도 아닐텐데(오히려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여러 분야에서 한국 여성의 우수성이 속속 증명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유독 한국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한 것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나 사회적인 환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서양에서도 과학은 군대 다음으로 여성을 철저하게 배제한 분야로 알려져왔다. 우리에게도 여성의 사회 참여를 철저히 배척한 조선시대 5백년의 유교적 문화전통에 최근 수십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남성 위주의 군사문화가 한국의 여성들, 특히 과학기술계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유교적·군사문화적 잣대로 현대 여성을 재단한 결과다.
물론 유교나 군사문화가 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각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
과학기술계도 남녀의 구별은 있되 차별이 존재해서는 곤란하다.
몇 년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출간돼 사회적으로 큰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다른 어떤 분야보다 논리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둬야 할 과학기술만큼은 유교적·군사문화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정책팀 김유숙 박사 y1kim@kiga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