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도그빌

 덴마크 출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우리시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답게 ‘도그빌’에서도 독창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쉴새없이 멈추지 않고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으로, 시험받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한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전쟁을 배경으로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직시한 ‘유로파’로 칸 심사위원 대상을 그리고 뮤지컬 스타일을 한차원 높게 응용, 존재의 방식에 질문을 던진 ‘어둠 속의 댄서’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도그빌’은 의심할 바 없는 우리시대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연극적 스타일을 영화로 차용, 제한된 무대공간을 오히려 장점으로 변용하며 인간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끌어낸다. 178분의 러닝타임은 오직 제한된 무대공간 안에서만 펼쳐진다. 도그빌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신도 트럭 위로만 화면을 제한해 공간을 집중시킨다.

 미국 로키산맥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 도그빌, 어느날 갱단에 쫓기는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분)가 8가구밖에 살지 않는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주민들의 결정으로 그녀는 2주의 유예기간을 얻어 마을에 머문다. 특히 그녀를 돌봐주는 톰(폴 베타니 분)과 그레이스 사이에는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이 싹튼다.

 2주 뒤, 주민들의 만장일치 찬성에 의해 그레이스는 도그빌에 머물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자투리 일을 도와주는 조건이었지만 그녀를 찾는 경찰의 실종자 포스터가 붙으면서 주민들은 조금씩 동요한다. 이제 그들은 경찰이나 갱단에 밀고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각자 그레이스에게 조금씩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도그빌의 첫 장면은 버드 아이스 뷰(bird eyes view) 쇼트로 찍힌 마을 전체의 모습이다. 그러나 집도 없고 길도 없다. 커다란 무대 위에 흰 분필로 길이 그려져 있고 8가구가 살고 있는 집 역시 분필로 구획되어 있다. 집도 담도 없다. 인물들은 각각의 집에 들어갈 때 문을 열고 닫는 동작을 한다. 마임과 함께 음향소리가 삽입돼 있어서 그들이 외부공간에서 내부공간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구분해 준다.

 몇몇 가구가 표현주의적 무대장치처럼 간결하게 핵심만 표현한 채 무대 위에 서 있다. 길의 끝에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것 같은 나무 한그루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의 뒤쪽은 험준한 산으로 차단되어 있고 마을과 연결되는 길은 하나뿐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영화의 순수함을 되찾기 위한 운동으로 ‘도그마 선언’을 발표했고 많은 동료들과 함께 상업성에 오염되어 가는 영화예술의 순수함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도그빌 역시 인간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이중성과 야만성을 무섭도록 섬짓하게 폭로한 작품이다. 특히 결말부분의 충격적 반전은 인간 본성과 함께 권력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의 권력을 쓰고 싶다’는 그레이스의 발언은, 이 영화가 우리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하나의 우화며 은유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