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터미네이터2’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용광로 속으로 사라졌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I’ll be back”을 외쳤던 그가 12년만에 ‘터미네이터3’를 앞세우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난 4일 미국에서 개봉된 ‘터미네이터3’는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작답게 단숨에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화려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12년간의 공백을 뛰어넘기 위해 제작비 1억9000만달러를 투입한 ‘T3팀’은 실감나는 액션 신을 위해 1㎞가 넘는 4차선 고속도로를 직접 건설하기도 했다. 3000만달러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크레인에 매달린 신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영화의 시작은 전편의 라인 위에서 출발한다. 12년전 미래에서 온 로봇 ‘T-101’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존 코너(닉 스탈)는 기계들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지도자로서의 고통스런 숙명을 끊기 위해 주소도 전화번호도 신용카드도 없이 세상과 단절돼 살아간다. 그러나 그를 제거하려는 미래의 기계(T-X)가 지구에 착륙하고 존을 지키기 위해 투입된 T-800은 이들 기계와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영화다. 55세의 나이에도 불구,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고 잘 어울리는 가죽점퍼와 바지, 검은 선글라스는 그간의 세월을 잊게 했다. 슈워제네거가 이번 영화에서 맡은 역은 미래의 저항군 사령관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미래에서 온 구형 사이보그 ‘T800’.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T-X에 비하면 기능이나 힘 등에서 초라하기 그지없다. 존 코너를 지켜야 하는 본래의 미션과 기계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T-X의 명령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계’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터미네이터3’는 슈워제네거 외에는 모두 새로운 사람이 포진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우선 1, 2편을 만들며 SFX 영화의 역사를 썼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빠졌다. 대신 ‘U-571’을 연출했던 조너선 모스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터미네이터2’에서는 액체 로봇 ‘T-1000’이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당시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한 액체 로봇은 기술적인 면이나 아이디어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스토리 라인도 탄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3편에서는 그같은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대신 ‘T3’ 제작팀은 무표정하면서도 잔인하기 짝이 없는 미모의 여성 로봇 ‘T-X’를 등장시켰을 뿐이다.
‘T-X’역을 맡은 신예 크리스티나 로켄은 내내 무표정한 모습으로 엄청난 액션을 보여준다. 구형 모델 T800과의 화장실 격투신에서는 미모의 여배우라는 사실을 잊게 해준다. 이 신은 리허설만 4주, 촬영에만 2주가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편이 큰 충격을 주었던 때문일까. 아니면 12년간 보아온 액션영화에 관객의 눈이 높아진 탓일까. 범상한 액션영화가 아닌 데도 불구, 전편에서와 같은 충격적인 장면과 흥분을 맛볼 수 없는 아쉬움은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터미네이터로서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