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름 일본에서 개최된 종합전기제품전시회는 나의 삶의 방향과 회사의 비전을 설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일반형 배전반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패키지형 초기제품을 내놓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새로이 도전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실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까지(아직도 많은 곳이 그렇게 되어있지만) 수배전반은 외부의 노출된 장소에 각 주요 구성기기(고압반, 저압반, 컨트롤 부분)들이 무질서하게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또는 공장이나 건물의 옥상에 철조망을 설치하여 보기 흉하며 각종 위험요소들이 많아 접근하기조차 못할 정도의 제품으로 제작·설치되고 있었다.
나는 이를 개선하여 하나의 패널 안에 고압반·저압반과 이를 컨트롤하는 각종 기기들을 복층구조로 조합한 모델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기존 설치면적 대비 25%의 공간에 직접 수배전반을 확인하며 이상유무를 파악할 수 있고 문제 발생시 즉시 조치가 가능하게 설계했다.
그 당시 일본에서도 나의 아이디어와 비슷한 기존의 배전반을 대체할 새로운 제품이 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은 나의 편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변화에 대한 거부심리와 법규상의 제약 등으로 인해 이 부분이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를 개발해 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의와 열정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제품개발에 대한 의지와 사업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가지고 있었다. 또 이를 개발할 만한 자금도 우연한 기회에 나에게 찾아왔다.
1997년 12월 3일, IMF를 통한 외환차입이 결정되던 날. 모두들 갑작스레 닥쳐온 엄청난 재난에 혼란을 겪고 있던중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IMF 체제 덕분에 3개월만에 10억원의 환차익을 보았다. 하늘에서 보물단지가 통째로 떨어진 것이다. 그해 9월 28일 인도네시아와 계약한 전기공사건에 대한 수출대금 96만5000만달러가 환율 890원대에서 3개월 뒤 잔금이 입금된 12월에는 2000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수출을 했고 생소한 환차익으로 10억원이라는 거금이 생긴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자금이 오늘날 전기와 IT를 결합하고 인터넷을 이용한 첨단 전기 분야의 기술을 만들어내게 되는 시작이 될 줄이야.
이후 약 2년 동안 경기도 광주에 수변전설비 연구소를 세우고 각 부문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 또 IT분야의 핵심 연구인력과 패키지형 수배전반의 핵심부품인 각종 디지털기기, IT를 접목할 수 있는 외부의 협력업체를 구하는 데도 매진했다.
나는 갑작스런 행운을 놓치지 않고 기존의 내 사업과 전기분야의 사업형식을 새롭게 전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