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공계의 공직진출 확대를 위한 방안이 다각적으로 강구되고 있다.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통합, 5급공무원 신규임용시 절반 이상 이공계 할당, 4급 이상의 기술·행정직급 통합 등이 주요 내용이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는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이공계 출신의 공직 임용 확대의 당위성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행정의 실무적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공직사회내에서 이공계 출신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대부분의 행정기관에서 기술적 성격이 강한 직위까지 행정직군이 차지함으로써 행정의 전문성이 확보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 구성비율을 보면 전체적으로 행정직과 기술직의 비율이 3대1로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구성비율과 거꾸로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상위직으로 갈수록 기술직의 비율(5급 31%, 3급 24%, 1급 9.7%)이 현저하게 낮다. 고급공무원이 되는 관문인 행정고시와 기술고시의 채용 인원도 5대1의 심한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다.
두번째는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속에서 국가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이공계 인력 육성의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이공계 출신의 공직진출 확대가 필요하다. 97년 전체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43.2%를 차지했던 자연계 지원자들이 2000년 34.6%, 2002년 26.9%로 급감하는 상황에서 이공계 공동화 현상은 이제 단순한 대학입시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기반 사회의 국가적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과학기술인력 양성의 절박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기 위해서도 이공계 출신의 공직진출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위 공직에 이공계 출신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
현 공직 구성에서 이공계 출신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이유로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이 중 고려시대 이래 기술관 등용시험을 잡과(雜科)라 하여 문·무과에 비해 격을 크게 낮추고, 사회구조적으로 기술직을 중인 계급으로 고착시킨 문화적 전통이 기술직 천시의 가장 큰 요인이다. 특히 일제시대 이래 법학 중심의 공무원 시험제도가 이공계 진출 미진의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직사회에 뿌리깊은, 기술직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공무원 채용시험 과목의 재조정이 시급하다. 공무담임자가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소수의 기초과목을 제외하고는 선택과목의 폭을 이공계 중심으로 크게 확대해야 한다. 특히 행정직 중심의 승진경로를 바꾸기 위해 상위직의 직군·직렬구조를 보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채용과 승진시 이공계 임용 할당제를 도입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과학기술인력 육성 필요성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체계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종수 한국행정학회장(한성대 대학원장) j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