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을 ‘원더풀 데이즈’가 기사회생시킬 것인가. 7년에 걸친 긴 제작기간, 126억원의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이 마치 ‘쉬리’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혁명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원더풀 데이즈’에 쏟아진 관심은 단순히 한 작품에 대한 기대치 때문은 아니었다. 디즈니나 드림웍스 등의 할리우드와도 다른, 혹은 지부리스튜디오의 저패니메이션과도 다른 한국적 애니메이션의 한 전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할리우드나 저패니메이션의 하청산업으로 머물러온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이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할 수 있기를 얼마나 꿈꾸어왔던가.
그러나 다시 문제는 시나리오다.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수많은 고급인력들이 쏟아낸 땀만큼 진일보된 영상을 만들어냈다. 한 컷 한 컷의 시각적 효과는 일찍이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인물 캐릭터들은 2차원(D) 셀 애니메이션으로, 뒷배경은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리고 중요한 부분은 미니어처로 만들거나 실사로 찍어서 디지털로 손질한 후 합성하는 모험을 했다. 이 야심찬 시도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2D와 3D의 합성은 매끄럽고 유려하며 미니어처 촬영도 공감각적 효과를 발휘한다. 일부 미니어처는 조악해서 실소를 자아내게 하지만….
그러나 영화가 그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15초짜리 CF를 400개 이어놓은 것이 장편영화는 아니다. 시각적 효과가 관객의 가슴 속에 파고들려면 그것을 끌고가는 내러티브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들을 사람은 소설을 봐라. 영화는 비주얼한 효과가 최우선시돼야 한다”는 김문생 감독의 발언은 무책임하다.
서기 2142년 환경오염된 지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더풀 데이즈’의 이야기들은 너무 낯익다. 대립되는 지역, 종족의 운명을 거머쥔 대표적 인물의 갈등과 삼각관계가 뒤섞인 이야기 구조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다. 더 큰 문제는 뼈대만 있고 그것을 움직이는 감성적 디테일이 없다는 것이다. 관습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서사구조, 울림이 없는 단순한 캐릭터들은 비주얼 효과를 감소시킨다.
시적 상상력이 넘치는 신화적 세계의 미야자키 하야오나 우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철학적 안목으로 접근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비주얼은 서사구조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탄력적 울림을 갖는다. 아무리 뛰어난 비주얼 화면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이 살아있는 내러티브와 연결되지 못하면 그 시각적 효과들은 거품이 돼 허공으로 기화된다.
다시 문제는 시나리오다. 한국 영화산업 발전의 일차적 출발은 우수한 시나리오의 확보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고급인력의 양성에 있다.
‘원더풀 데이즈’의 마지막 문제점은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들이다.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성우들은 천편일률적인 대사를 한다. 차라리 외국어로 더빙되고 한글 자막이 나온 ‘원더풀 데이즈’를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들이 브래드 피트 같은 톱스타들을 기용해서 목소리 연기를 하게 하는가. 스타 마케팅에도 이유가 있지만 배우들의 자연스런 대사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얼마나 큰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뛰어난 시각적 효과를 살리지 못한 목소리 연출 역시 감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부분적 성공에 그치고 만 ‘원더풀 데이즈’는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홀로서기를 뒷날로 기약하게 만든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