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이하 시카프)이 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벌써 7회째를 맞는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행사다. 필자가 처음 시카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96년 2회 때부터였으며 올해는 SPP(Sicaf Promotion Plan)라는 산업 프리마켓의 애니메이션 담당을 맡고 있다.
시카프는 1회 때부터 평균 20만명이 관람한 행사지만 대부분이 국내 관람객들이었고 해외로부터 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간혹 찾아온 해외 손님의 경우 시카프에서 비용을 부담하고 초청한 사람이었다.
2001년 시카프에 처음 SPP가 도입되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놀랍게도 SPP를 방문하겠다고 사전등록한 외국인들이 벌써 40여명에 이른다. 시카프가 비용을 부담하는 이는 이 중 10명에 지나지 않는다. 소속이나 직책도 꽤나 지명도가 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일본이나 중국에서 오는 손님들은 자국의 애니메이션업계를 대표할 만한 기업이나 인사들이다. 이게 뭔 일인가 싶은 상황이다.
올해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경국제애니메이션페어(TAF)’에 출장을 갔을 때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대표적 인사 몇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소니뮤직 계열의 ‘애니플렉스(Aniplex)’의 다케우치 사장은 “한국 애니메이션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으며, 6대 메이저 제작사 중 하나인 ‘그룹타크(Group Tac)’의 가완도 책임PD는 “한국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합작을 추진하고 싶다”며 좋은 스튜디오 소개를 부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의 스태프로부터 지브리가 ‘마리이야기’(이성강 감독)의 일본내 배급추진 의향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알고보니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마리이야기를 좋게 평가해 나온 얘기였다.
칠순이 넘은 몸으로, 더구나 새로운 극장용 장편 제작으로 한참 바쁜 다카하타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시카프 SPP에서 한국의 젊고 참신한 애니메이션 감독과 기획자를 만나고 싶은 의도 때문이다.
중국에서 오는 인사들의 방문도 구체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베이징TV의 경우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88올림픽과 올림픽 소재 애니메이션을 만든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업계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의 장국강 총경리는 세계시장에 함께 진출할 한·중합작 대상을 찾고자 방한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우리 애니메이션업계는 하청산업의 축소와 창작산업의 미성숙으로 인해 비관적인 분위기가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이나 중국 등 외국에서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에 긍정적 관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것보다 밖에서 보는 우리가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대해본다.
<김의건·프리랜서 애니메이션 PD kgunn22@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