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의 편지](28)JTT 출범의 흑막

 지난 줄거리

 아키라의 두번째 청부살인의 가능성이 JTT 민영화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을 가지게 된 에이지는 하숙집 동기생 출신으로 도쿄대학 교수가 된 히하라를 찾아가 상담을 한다.

1999년 6월 29일

도쿄

 쓰유(일본의 장마철)가 찾아 온 도쿄의 나날은 우울하고 답답하다. 지진에 무너져도 사람이 치어죽지 않도록 얄팍하게 지어놓은 일본의 가옥들은 공중과 바닥 양면에서 들어오는 습기를 막아주지 못한다. 바닥의 다다미도 습기를 머금어 맨발에 끈적이는 느낌이 들어 움직이기가 싫을 정도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히로코가 말은 건다.

 “아키라상의 일기는 전체를 복사해 왔는데 어떻게 하실 작정이에요?”

 “아, 그게 있었지! 물론 원본은 에리카상에게 보내야지. 남편의 유품이니까.”

 이 말을 하며 에이지는 JTT 민영화와 관련하여 아키라의 일기를 찬찬히 훑어보는 게 급선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히로코, 우리 일기 좀 같이 볼까?”

 히로코가 복사해 온 일기는 모두 A4사이즈이고 연도별로 묶여 있어 노트보다 한결 보기가 편하다.

 “자, 그럼 1985년 4월 1일로 가보지. 그 날이 JTT가 주식회사로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날이니.”

 

1985년 4월 1일

 드디어 주식회사 JTT의 출범이다. 3월 28일의 JTT설립위원회에서 정관과 23명의 임원진이 확정되고 총재가 사장으로 바뀌는 경영형태의 변경이 이루어졌다. 총재실 소속이던 나의 일은 당분간 사장비서실에서 계속될 것이다. 총재실 산하의 경영관리회계추진실의 일은 앞으로 주식문제로 전환될 것이다. 골치아픈 일이다.

 

 “아키라상은 비서실에 있었군요”

 “그럼. 비서실에서도 안도 총재, 그러니까 민영화 후 안도 사장의 총애를 받는 몇 사람 중의 하나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

 “그런데 이 일기의 느낌은 별로 좋지 않군요. 앞으로 주식문제를 담당하게 되니까 골치가 아프다는 이야기인데요?”

 “글쎄 말야”

 이야기가 여기에 미치자 에이지의 뇌리 속에는 어제 히하라 교수가 설명한 말이 떠오른다. 과거 전전공사에 전액을 투자한 일본정부, 즉 대장성은 민영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정부재원의 확보를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많은 개인주주들에 의한 주식의 보유라거나 사원들의 주주로서의 참여 등은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일기를 훍어보는 것보다 히하라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에이지는 히하라에게 전화를 넣는다.

 “모시모시.” 히하라는 즉시 휴대전화에 나온다.

 “어제는 고마웠네. 지금 아카라의 일기를 좀 보았는데 말이야, 아키라가 경영관리회계추진실에 있다가 JTT 출범과 더불어 사장 비서실에서 주식문제를 담당하고 있다고 쓰여 있구먼”

 “그래?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주식관련으로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면 어떤 대목일까?”

 “글쎄, 그거야…. 아마 이는 프린시펄과 에이전트라는 개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야, 이 사람아.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내게 지금 강의하나?”

 “뭐 그런 건 아니고. 프린시펄이란 주식이라는 재산권을 가진 사람이고 에이전트란 프린시펄이 재산을 늘리기 위하여 고용하는 전문경영인라는 거지. 즉 국영기업인 경우에는 이것이 관계가 없지만 주식회사가 되면 주주와 고용된 경영인이 형성되는 셈이니까 새로운 인간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주식회사가 되면서 과거 국영기업 당시에 없던 말썽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구먼.”

 “바로 그거지.”

 “내가 말했지만 아키라군이 내게 일기를 남기고 갔는데 일기에 혹시 힌트가 있다면 어느 대목을 봐야 할까?”

 “글쎄…, 자네 오늘 자문료도 내지 않고 묻는 것이 많구만. 1987년 경을 봐. 대장성이 보유하던 주식을 증권시장에 방출하여 거금을 걷어들인 것이 그해이거든. 그해부터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JTT주를 보유하는 주주들로 등장했을 거야.”

 히하라의 예견은 적중하였다. 1987년부터 아키라의 일기에는 주식관련의 일들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1987년 3월의 한 일기는 에이지와 히로코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1987년 3월14일

 3월로 끝나는 회계연도의 결산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 K의원 비서관의 요청에 못이겨 이노우에라는 자를 만나다. 지난 1월의 정부주식 방출에 상당한 주식을 확보하였다는 것이다. 이 자가 K의원에게 정치헌금을 하는 자임에는 틀림없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지식인은 아니고 고급건달로 보인다. 이자가 나중에 무슨 화근이 될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한 후 전무와 상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노우에라….” 에이지는 천장을 쳐다보며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여기 보세요.” 히로코가 무엇인가 발견한 모양이다.

 “87년 후반으로 넘어가니 영어 이니셜로 I라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사람이 이노우에 아닐까요?”

 그러고보니 그렇다. 88년 후반에까지 마치 I라는 사람이 아키라 인생의 중요한 파트너나 되듯이 자주 등장하는데 친구나 애인관계는 아니고 회사일로 관계되는 사람이다. 회사일로 관계되는 사람이 아키라의 개인 일기에 왜 이리 자주 출몰할까? 이노우에라면 흔한 일본성이고 영어로 표기하면 Inoue다.

 “우리 탐정노릇은 다시 한 번 미궁에 빠졌네.” 에이지가 푸념하듯이 말한다.

 “우리 아시야시청의 혼다상에 다시 한 번 전화해보지 않을래요?”

 “그거 좋은 아이디어인데!”

 에이지는 즉시 혼다에게 전화를 넣는다. 혼다의 목소리에는 이제 친구와 같은 친근감이 묻어 있다.

 “그래, 미국에 가서 뭔가 성과가 있었어요?”

 “네. 후지사와군의 전 부인되는 에리카상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들었습니다.”

 “전부인?”

 “네. 이미 수년 전에 미국인과 결혼을 했더군요.”

 “그렇군요….” 혼다의 목소리에는 마치 자신의 누이라도 빼앗긴 것 같은 아쉬움이 들어 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혼다는 아직 근무시간이어서 바쁜 모양이다.

 “혼다상, 아이라는 사람 알어?”

 “아이?” 한참을 뜸을 들이다 “아이(愛)짱이라면 중학교때 내가 좋아하던 여자아이인데….”

 “그런 아이 말고. 영어 I자로 성이 시작되는 인물을 말하는 건데.”

 “글쎄요….” 혼다는 기억을 더듬는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눈 앞에 업무를 처리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이 돌아가신 후지사와 형님과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87년 이후 일기에 자주 나와요.”

 “87년?” 하더니 뭔가 침을 꿀떡 삼키는 듯한 분위기가 전화기로 전달이 된다.

 “혹시 가부토초의 늑대라는 인물이 아닐까?”

 “가부토초의 늑대?”

 “한때 작전주식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치가와도 연분이 두텁다고 들었는데….”

 “누구한테 들었다는 겁니까?”

 “거기까지는 조금….”

 혼다는 망설인다. 손을 씼었다고는 하나 더 이상 극도세계의 비밀을 말하지 않으리라.

 가부토초의 늑대라. 가부토초라면 도쿄 증권거래소가 있는 지구의 이름이 아닌가. 말하자면 도쿄의 월스트리트인 셈이다. 가부토초의 늑대. 이노우에. 에이지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다. 히하라 교수에게 다시 한 번 전화를 건다.

 “날세. 자꾸 전화해 미안하네. 자네 가부토초의 늑대라는 말 들어봤어.”

 이 대목에 히하라가 긴장하는 느낌이 전달된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 인간의 이야기가 후지사와 일기에 나오나?”

 “왜 안 좋은 소식이야?”

 “흠…. 나중에 또 이야기하세. 그 사이에 가부토초에 있는 증권경제연구소에 가서 자네가 직접 좀 리서치를 해보게.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거야. 자 그럼.”

 가부토초는 백화점이 많은 니혼바시(日本橋) 근처에 있어 사람이 늘 붐빈다. 일본증권협회의 한 층을 점한 증권경제연구소는 규모에 비해 장서가 많고 개가식이라 마음대로 뽑아 볼 수 있다. 가부토초의 늑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작전주식을 하는 인간이라면 정규적인 문헌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그늘에 숨어 있는 야사적인 인물이리라. 에이지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사서에게 전후 일본증권경제의 야사 비슷한 출판물이 있는지 묻는다.

 “야사요?” 신경질적으로 생긴 여자 사서는 마치 잡상인이 들어온 듯이 에이지와 히로코를 위 아래로 훑으며 묻는다.

 “네. 만화를 좀 그리는 사람인데 이야기를 구상하려고요….”

 그러면 그렇지 너희가 전문가는 아닌데 하는 얼굴로 증권관련 소식이 많이 나오는 주간지와 일간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눈꼬리가 올라 곧 시비를 하려는 히로코의 팔을 지긋이 잡으며 에이지는 의자에 앉아 85년부터 신문을 훑기 시작한다.

 

sjroh@alum.mit.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