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주제]IT장관 초청 특별 간담회

 ‘더이상 이공계 출신들이 공직사회에서 비주류로 남아선 안된다.’

 지난 1일 오전 전자신문이 마련한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를 위한 특별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지식정보사회에서 과학적 마인드와 전문지식을 겸비한 이공계 출신 전문가들을 공직사회로 대거 유인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다만 그 실천방안에 대해선 급진적 개혁론과 점진적 개편론으로 엇갈리는 분위기였다.

 

 참석자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김태유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황윤원 한국행정연구원장

  사회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

 

 ◇사회(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참여정부가 지향하는 과학기술입국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인물이 모두 모인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참여정부의 국정목표인 제2 과학기술입국을 위해 최근 이공계 육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나 다소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각 부처는 물론 정부가 실제로 내놓을 수 있는 장단기 정책과 대책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특히 한 부처에만 속하지 않고 모든 부처에 걸쳐 이공계 문제가 제기된 원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박호군(과기부 장관)=지금까지는 이공계의 공직진출이 제한돼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이공계 전문가의 경험을 반영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이공계가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인문계의 3분의 1 정도입니다. 행정고시와 기술고시는 3 대 1 수준으로 문호가 좁습니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합니다. 이런 불평등으로 이공계 출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98년 국제통화금융(IMF) 시절 구조조정의 1순위는 정부나 기업 모두 이공계쪽이었습니다. 정부출연연을 비롯해 기업연구소가 제일 먼저 구조조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이공계 기피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대입수험생 중 이공계 진학 희망자는 30% 수준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갖가지 유인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공계인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제기된 이공계 공직 확대 방안은 환영할 만합니다.

 ◇사회=윤 장관도 핵심 산업부처의 수장으로서 이공계 문제에 대해선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윤진식(산자부 장관)=이공계 공직진출 확대에 대한 기본원칙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산자부는 현재 기술직이 2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급인 기획관리실장을 비롯해 주요 국·과장도 기술직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공직의 영향력이 어느 나라보다 큽니다. 지금까지 소외됐던 이공계 출신들의 장점을 활용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데 동감합니다.

 그러나 박 장관 얘기대로 이공계 공직진출 비율을 행정직과 50 대 50으로 맞추는 게 적당한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과기·산자·정통부를 제외하고 금융감독원이나 법제처 등은 이공계 공직자가 해야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조건 이공계 공직자를 대폭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부처의 특성을 반영해 업무의 성격과 성질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계획수립이 먼저입니다.

 이공계 인재가 필요한 자리를 잘 파악해 점진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특히 각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사회경력과 대학교육을 받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공계 공직 확대는 단순히 그 비율을 일대일로 맞춘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업무성격·경력·전공 등을 고려해 결정하고, 비이공계가 있는 곳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이공계를 투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업무에 따라 행정·기술직 비율이 9 대 1이 적당한 곳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잘 알겠습니다. 정통부도 이공계 쪽과는 가까운 부처 아닙니까. 삼성전자의 경우 CEO급 중 이공계 출신이 60%에 육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삼성 출신인 진 장관의 견해가 궁급합니다.

 ◇진대제(정통부 장관)=이공계 공직진출을 비롯해 현재 이슈화된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전체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장에 들어가 보니 이공계 문제의 핵심은 너무 낮은 보수에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은행원 초임 수준의 보수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2억원), 변호사(1억8000만원) 등 전문직 종사자들에 비해 출연연 박사급 연구원(5000만원)들의 평균임금 차이가 너무 큰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공계 문제 해결은 힘듭니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이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히면서 이공계 분위기가 이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바뀔 것이라는 불안과 함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불신도 여전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평생을 결정하는 진로선택에서 이공계를 가면 손해를 본다는 분위기를 없애야 합니다. 평생을 연구해야 할 연구원들이 ‘사오정(45세 정년)’이란 말을 남의 말로 듣지 않고 있습니다. 한창 일할 시기에 일을 그만둬야 하는 불안한 미래를 가진 것이 이공계의 현실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인재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공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도 필요합니다. 드라마 등에서 의사와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했던 것처럼 이공계 출신 CEO나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등을 제작해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체육인에게 상무부대가 있듯이 이공계 출신들에겐 ‘IT전문부대’를 창설, 군대를 가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정통부는 모든 보직의 복수직화를 통해 기술직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입니다.

 ◇사회=모든 보직을 복수직화하면 이공계 출신들에게도 기회가 더 많이 열리겠네요. 그런데 진 장관이 보시기에 이공계 출신과 인문계 출신이 업무상에 차이점이 있습니까.

 ◇진대제=단순 기술자로서 공직에 적응하느냐, 못하느냐는 개인의 자질 문제일 것입니다. 다만 복수직을 늘려도 자질이 있는 이공계 출신들을 널리 중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자는 것이지요.

 ◇사회=그럼 이제 오늘 유일하게 정부부처가 아닌 외부 전문가로서 참석하신 황윤원 한국행정연구원장님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원장님도 그동안 행정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를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황윤원(한국행정연구원장)=이공계 출신이 공직에 진출해도 반드시 이공계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이공계 기피현상과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등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이공계 공직 확대를 추진한다고 해서 이공계만 우대한다고 하면 행정직의 역차별 논란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괜히 경쟁심만 높아질 것입니다. 특히 이공계 비율을 5급이상 50%, 3급이상 30% 식으로 쿼터화하는 것은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관련 공직 수요가 그만큼 따르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공직진출 비율만 높였을 경우 행정직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이공계가 메우게 돼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공계 공직진출을 늘리기 위해선 지식과 행정능력을 잘 조화시킬 수 있도록 재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미국도 이공계 출신은 MPA란 전문대학원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 이공계 기피현상의 근본적인 문제는 보수의 차이입니다. 70년대만 해도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보수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공계 사람들이 인정을 받고 그에 합당한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문화를 확산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훌륭한 과학기술인들이 현장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공계 출신이 공직에 들어와 홀대받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며 공직에서 또한 적절한 대우를 해야 합니다. 공직에 기술직으로 들어왔다고 하여 계속 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리 능력이 있는 인재에게는 능력배양 프로그램을 통해 발전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사회=사실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움직임이 일자 공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행정직 공무원들의 반발이 있지 않습니까.

 ◇황윤원=맞습니다.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는 행정직의 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공직에 이공계 지식과 행정을 융합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종에 공직에 대한 경쟁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지 몇%의 비율을 특정 계통 출신으로 채우는 식의 쿼터제는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이제 공이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정책의 중심에 서계신 김태유 보좌관에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

 ◇김태유(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최근 발표된 이공계 공직진출이라는 화두에 대한 일부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은 결코 이공계 기피 해소를 위한 대안이 아닙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어떤 나라가 더 선진국이냐는 산업혁명을 먼저 한 순서로 판가름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못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먼저 산업혁명을 먼저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산업혁명이 아니라 지식정보사회입니다. 어느 나라가 지식정보화에 발빠르게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선진국 여부가 가려질 것입니다. 따라서 급변하는 지식정보사회로 가기 위해선 이런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는 공직자가 우리 국민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입니다. 기업은 앞서가고 정부는 뒤떨어져 있습니다. 과거 경제계획을 세워 우리나라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 놓은 엘리트 공무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시스템은 그 이후 개혁이나 변화가 없었습니다. 변해가는 지식정보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편이지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해석돼선 안됩니다. 이제 이공계 학문은 기본적인 교양입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이공계에 대한 교양이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전쟁이 우주전이라면 이제는 태권도나 총검술을 하는 군인으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미래 전쟁에는 컴퓨터와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구상에 있는 조직 중에 효율적인 팀은 스포츠팀이라고 합니다. 축구팀의 감독은 언제나 축구선수 출신입니다. 축구가 감성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 전략을 잘 수립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는 이공계를 모르는 사람이 지식정보사회에서 제대로 된 전략을 짤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입니다. 비가역성에 의해 자연과학을 공부한 사람은 인문과학에 대한 이해가 쉽지만 그 반대는 어렵습니다. 지금보다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업무내용은 변하는데 조직이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0∼20년 후 지금의 사무관들이 고위 공직자가 됐을 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자연과학 교수 출신답게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공계 출신들이 공직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윤진식=아마도 가장 큰 어려움은 법률체계일 것입니다. 정부의 모든 행정은 법에 따라 이뤄지므로 일반적인 법률지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공계 출신 공직자들에겐 법률과정을 만들어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진대제=기존의 틀에 묶여선 안됩니다. 전 공직경험이 없지만 기업과 세계시장의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은 치열한 경쟁 속에 변화를 추구하지만 정부는 계속 뒤처져 있습니다. 기업과 공직은 차이가 큽니다. 이제 정부도 기업처럼 치열한 경쟁시대로 진입해야 합니다. 고시로 공무원을 임용해 평생직장으로 인식하는 것보다 외부 인재에 대한 과감한 수혈로 역동성 있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 임원 중 60%는 외부 수혈 인재로 구성됐습니다. 지금은 좀더 개방적인 공직자 임용제도가 제시돼야 할 시점입니다. 인력의 순환이 필요하며 공직자와 기업간 능력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박호군=이공계 공직진출 문제는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출신에 기회 자체를 균등하게 주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이공계 출신이 자신의 소양에 따라 법률지식이나 직무에서 습득해 경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에겐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줘야 합니다. 화학과를 졸업한 GE의 잭 웰치 사장은 이공계 출신이지만 자신의 사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영능력을 습득해 GE를 이룩했습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키워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이공계 공직자의 인원을 늘리자는 것이 아니며 고위직으로 갈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합니다.

 ◇김태유=그렇습니다. 60년대 100달러였던 국민소득이 지금은 1만달러입니다. 우리나라 규모가 100배 늘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농토가 100배가 늘어나면 이제 더이상 호미를 든 농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트랙터를 끌고 비행기로 씨를 뿌리는 농부가 필요합니다. 이제 다음 세대, 지금의 고등학생들에게 어떤 소양을 가르쳐서 어떤 지도자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지식기반 사회의 기본소양으로 이공계 소양을 강조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실학파를 주장했던 관료들이 이런 논의를 200년 전에도 했을 것입니다. 그때는 유학자들에 밀려 산업화를 하지 못해 발전이 늦어졌습니다. 그런 과오를 이제는 범하면 안 됩니다.

 ◇사회=이공계 공직진출 확대의 문제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기술의 관점에서 접근돼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단순히 직급을 어떻게 하고, 어느 계통 출신의 공직자를 늘리는 차원은 아닐 것입니다. 이공계 공직확대 문제는 과학적 마인드를 가진 전문가들을 존중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제2의 과학기술입국’을 여는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정리=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