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총수인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로 현대그룹 경영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때 8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국내 최대 재벌로 군림하던 현대그룹은 2000년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계열분리가 이뤄져 정 회장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으로 현대아산,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 11개 계열사가 들어왔다.
당시 정몽준 의원에게 맡겨진 현대중공업과 정몽구 회장에서 돌아간 현대자동차외에도 현대건설, 현대상사 등의 핵심 계열사들은 독자적으로 경영돼온 터라 이번 정 회장 자살로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을 전망이다.
공식 직함은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현대상선 비상임 이사’밖에 없는 정 회장은 현대상선 지분 4.9%를 앞세워 현대그룹을 지배해왔다.
현대상선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 지분은 현대아산 40%, 현대증권 16.63%, 현대투자신탁증권 1.5%, 현대정보기술 4.84%, 현대택배 30.11% 등이며 현대증권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4.89%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룹총수 지위는 ‘상징적’인 것일 뿐 지난 2000년 ‘왕자의 난’이후 정 회장은 대북사업에만 전념하고 나머지 계열사는 전문경영인이 맡겨 사실상 독립 경영 체제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가장 큰 변화가 생길 곳은 역시 정 회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현대아산이다. 정 회장이 김윤규 사장 앞으로 작성한 유서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을 당부하며 자기 대신 대북사업 방향을 잡아가도록 당부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일단 김 사장이 현대아산과 대북사업을 주도적으로 끌고갈 전망이다.
그러나 고 정주영 회장의 유지가 담긴 대북사업에 현대가 형제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 지분 구조상 정몽구 회장의 현대그룹 챙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15%의 현대미포조선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현대차가 현대상선의 지분을 확보하고 현대오토넷과 현대정보기술을 인수해 이 회사들의 대주주인 현대투자증권을 지배하게 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현대아산에 직접 출자해 대북경협 사업에만 발을 담그는 방안도 있는데 이 경우 현대아산의 지주회사인 현대상선과의 조율이 필요하다.
현대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인수하는 것도 한가지 대안이지만 몽헌 회장의 아들인 영선씨가 몽헌 회장의 현대 엘리베이터 지분을 상속받고 경영수업에 나설 경우 무리한 인수는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 현대그룹 경영개입설을 현대차측이 부인하고 있고 지분구조상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완전히 별개의 회사이긴 하지만,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집안을 추스리고 현대그룹 옛 명성을 되살리는 일을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조심스런 관측이다.
또, 일각에서는 이번 일이 그동안 자금난에 시달려온 현대아산이 금강산 사업의 주도권을 정부에 넘겨주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