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영업사원으로 사내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던 중 나는 포스트잇 세일즈로 옮기라는 갑작스런 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유치원생들까지도 포스트잇을 사용하지만 1983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이 제품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따라서 판매가 부진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명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좀더 편안한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해 내심 불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는 더욱 열정적으로 새로운 일에 매달릴 수 있었다.
포스트잇 세일즈로 바쁘게 일하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컴퓨터 시장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때마침 당시 3M의 제품 중 컴퓨터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디스켓 세일즈 담당 자리가 공석이 되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전임자 2명은 모두 명문 공과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였다.
영문학을 전공한 나는 당시 컴퓨터의 원리나 개념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터라 남들이 보기에는 컴퓨터 소모품의 세일즈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었다. 이에 비해 사내에 이 자리로 옮기고 싶어하는 희망자들은 줄을 서고 있는 판국이었다.
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사업본부장을 직접 만나 담판을 했다. 내가 비록 전자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제품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면 분명 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최고의 세일즈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달했다. 이같이 당찬 나의 포부는 사업본부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결국 내게 행운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나의 뜻과 결정이 처음에는 나에게 탄탄대로를 열어 주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무리한 제조설비 투자로 인해 디스켓 사업이 계속해서 적자를 면치 못한 것이다.
물론 나의 결정에 대해 후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명감이라 생각한다. 훗날 이메이션 한국법인이 설립될 당시 디스켓이 이메이션코리아의 사업 근간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나의 사명감에 힘입은 바 크다.
IMF가 닥쳤을 때도 회사를 살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최고의 효자 상품이 바로 디스켓이었다. 새삼 돌이켜 보면 3M에 입사를 결심한 것과 디스켓 세일즈로 보직을 이동한 나의 결단이 오늘날 이메이션코리아의 전문경영인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한 밑거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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