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새 도전은 새 전략으로

 수년 전 ‘캐즘(chasm)’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주로 인터넷을 필두로 하는 신기술들이 산업 및 기업경영에 도입돼 발전함에 있어서 단절, 혹은 극복해야 할 격차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 말이다. 90년대 중반 한국 기업들이 엄청난 속도로 신기술을 습득하면서, 다시 말해 IT화되면서 한국경제는 이 캐즘을 극복했다고 생각한다(의미가 엇비슷하지만 패러다임은 바뀌고 캐즘은 극복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반도체·조선·휴대폰·자동차 등 첨단과 전통이 어우러진 산업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단지 조속한 IT도입만의 결과는 아니었겠지만 상대적으로 빠른 IT화가 선진 경제대국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으로부터 시작된 업무 프로세스 개선이 기업과 산업의 IT인프라 확충으로 확대돼 그 결과 산업, 혹은 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로 연결된 예는 전세계적으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당연히 한국경제의 빠른 IT화는 경쟁 중소국가들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성과를 딛고 선 한국 경제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은 무엇인가?(What is next?)’가 돼야 할 것이다. ‘정보통신강국인 한국이 직면한 캐즘은 무엇인가?’ ‘만약 여러가지의 캐즘이 존재한다면 역량을 집중해서 빨리 극복해야 할 핵심 캐즘(key chasm)은 무엇인가?‘ ‘그 방법은 무엇인가?’ 등등의 도전요소에 대한 냉정한 파악이 필요한 것이다. 수십년 동안 관행이 돼온 정부주도의 경제발전모델에 대한(혹은 리더십모델의) 재정의, 중국 등의 국제경쟁구도의 변화에 대한 국가적 대응, 대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간의 유기적인 산업연관효과 재고, 원천기술에 대한 확보 역량, 기술인력 육성 등의 많은 도전요소를 우선 순위화하고 단기·중기·장기적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등의 구체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확대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상의 도전과제들이 복합적이라는 데 있다. 과거에 비해 더욱 명확한 비전과 계획이 공유되지 않고는 각 정부부처, 기업, 단체 등의 팀워크가 발휘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또한 새로운 도전에는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바, 과거의 방식에 안주하는 안전한 전략으로는 전혀 다른 경쟁상황과 시장구조에 상응하는 돌파전략이 나올 수 없다. 하던대로에 젖어있는 이상 한국 경제는 도태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를 생각해야 한다.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한다’는 앨리스의 토끼야말로 정신없이 변화하는 글로벌 경쟁체제에서의 한국의 위상이라는 이야기다. 모두 다 전력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어진 환경으로 인식하고 여기에다 생각하면서 달린다는 노력이 더해져야만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정부든 개별 기업이든 새로운 전략의 수립과 실행을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 노력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차원을 넘어 변화를 주도하려는 노력이어야만 한다.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이 해놓은 것을 개선하고 개량하는 사업모델로는 제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의 이동통신단말기 생산업체들은 불과 2년 만에 한국 제품과 품질의 차이가 거의 없으면서 가격은 50% 이하인 제품을 내놓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요소가격 확보전략은 중국과 인도의 몫이다.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과감하게 제시되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연결시키는 집요한 사업감각이 결합될 때,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정부정책과 국가적인 사업환경이 성숙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캐즘을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선진경제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게다가 창의성, 은근과 끈기는 우리 민족이 내심 자신있어 하는 분야가 아닌가.

 

◆박영훈 셀빅 사장 Edward.park@jt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