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을 잡기 위한 다국적 서버업체들의 공략이 거세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미 HP·IBM 등 주요 다국적 IT기업들이 본사 차원에서 국경을 초월해 관리하는 ‘글로벌 톱’ 고객 상위권 안에 포함된 지 오래다. 컴팩을 합병한 HP는 4개의 그룹군을 중심으로 현 조직을 구성한 ‘피라미드형 시장’ 분류에서 최상위군에 삼성이 포함됨을 전세계적으로 밝혔다. 지난해부터 ‘고객참여모델(CEM)’이란 프로그램을 내세워 대기업에 대한 밀착 영업을 전개하고 있는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역시 삼성측에 ‘트레이드 밸런스’를 내세우며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대 삼성 영업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조만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삼성전자와 ‘서버사업에 관한 포괄적인 제휴’를 추진 중인 일본 굴지의 기업 NEC마저 가세함으로써 삼성그룹을 겨냥한 이들 다국적 서버업체들의 움직임이 IT시장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 연평균 하드웨어 물량 2000억원=삼성은 다국적 IT기업들의 시스템 공급이나 프로젝트 마무리 이후에도 언론 공개 과정에서 가장 까다롭게 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벤더들은 이 ‘깐깐한’ 고객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바로 연간 최소 5000억원(하드웨어만)에는 달하는 그룹 물량 때문이다.
오랫동안 삼성 영업을 담당해온 IT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단일 기업의 하드웨어 물량만 단순 계산해도 연간 2000억원은 너끈히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선진기업답게 글로벌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도입에도 국내 어느 기업보다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최근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100억달러를 넘어서며 세계 25위에 랭킹된 것에도 알 수 있듯이 ‘준거 사이트(레퍼런스)’로서 삼성이 결코 어느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기 때문에 다국적 IT기업에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핵심 고객인 셈이다.
◇NEC와 삼성전자 제휴=삼성그룹이 새삼스레 주목받는 것은 일본 NEC가 삼성전자측과 서버사업에 관한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면서부터다. 삼성전자와 NEC의 협력은 8일 공식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연락사무소 형태의 NEC코리아가 있지만 국내에서 서버사업을 펼치기 위한 최소한의 유통망조차 없는 NEC가 삼성전자를 파트너로 선택한 데는 무엇보다 삼성전자 자체 수요에 대한 메리트가 엄청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즉 NEC는 삼성그룹 내 물량을 발판으로 자연스럽게 국내 서버시장에 무혈 입성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NEC측이 원하는 대로 스토리지 사업까지 삼성전자가 맡아줄 경우 NEC의 한국시장 진출은 이미 진출한 미국계 중심의 다국적 IT기업을 곤란하게 할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텃밭을 수성하라=삼성에 대한 다국적 IT기업의 공략이 심해지면서 가장 곤란한 표정을 짓는 기업은 한국HP다. 한국HP가 과거 삼성과 HP의 합작사에서 분리독립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삼성 내 한국HP 입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삼성그룹 전체 인프라 중 HP 물량은 50% 이상, 그룹의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 단일 기업의 경우 어림잡아도 70%는 너끈히 넘을 것이란 데는 경쟁사도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한국HP에서 삼성영업을 전담해온 인력들이 대거 자리를 옮긴 한국썬도 올들어 삼성으로의 공급물량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NEC의 협력은 이들 모두에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한국HP에서 삼성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함기호 이사는 “삼성전자가 NEC와 체결하는 서버사업 제휴 범위와 그 결과를 봐야 하지만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며 “특히 NEC가 공급하는 아이테니엄 서버는 리눅스와 윈도서버2003 OS만을 지원할 뿐 ‘HP-UX’와 같은 유닉스 OS를 지원할 수 없어 기간계 업무 침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지난해부터 삼성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국썬도 이제 뚫기 시작한 삼성 영업에서 NEC의 출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썬의 최동출 전무는 “고객사의 구매 관행이 유명 밴더의 제품이라 해서 무조건 사는 것도 아니고 서비스와 사후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배우고 있다”며 “프리세일즈와 엔지니어 인력을 영업인력만큼 보강해 더욱 철저한 서비스로 승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같은 계열사라고 해서 무조건 제품을 사주는 관행이 많이 극복됐다는 점을 들어 삼성과 NEC의 제휴가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결국 NEC는 삼성전자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제품의 질과 서비스를 검증받아야 할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