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금융업계가 급변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사용해왔던 종이통장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는가하면 휴대폰 등 새로운 기기를 통한 금융거래도 가능해졌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창구업무를 극소화하려는 데 따른 새로운 장치가 쏟아져나오는 움직임이 매우 빠르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오는 결과물을 통틀어 ‘전자금융’으로 통칭하고 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이처럼 ‘전자금융’을 강력하게 추진하고는 데 반해 아직도 과거에서 몇발자국 벗어나지 못한 곳도 있다. 전자금융의 장애요인으로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제도적 모순도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보수성이다.
최근 시중은행인 A사의 한 프로젝트가 시범적용대상이었던 지점의 반대로 무산된 경우가 그렇다. 상호저축은행 고객이 매월 이자를 A사의 계좌를 통해 상호저축은행으로 자동이체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개요였다. 이를 위해 상호저축은행·금융솔루션업체·A사의 시범적용대상인 지점이 계약을 맺기로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계약 당일 일부 부도덕한 상호저축은행의 비리가 알려지자 해당 지점장은 바로 계약을 파기해버렸다. 부도덕한 상호저축은행업계와 거래하는 것은 금융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진 계약 파기 이유다.
고객을 위한 배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약 당일 터진 일부 상호저축은행의 비리는 이번 프로젝트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다른 은행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 안정성이 인정되고 있는 일이다.
무조건 변화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객요구가 앞서가는 만큼 무조건 보수성을 띠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지 않은가.
◆디지털경제부·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