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후 행정부처 조직개혁의 움직임 속에 정보통신부가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방송법 개정과 정책연구기관인 방송통신정책개발원 설립 등으로 방송통신융합 시대의 주도권 장악에 나선 가운데 행자부가 전자정부국을 신설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등 정통부 업무영역을 넘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자칫하면 정통부의 3개 업무 축인 △정보통신 △국가정보화 △IT산업육성 가운데 핵심인 2개 업무를 내줘야 하는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IT산업육성마저 최근 신성장 동력 프로젝트에서 산자부 등에 주도권을 상당 부분 내주고 있다. 정통부로서는 조직 차원의 위기감을 느낄 만하다.
정통부는 당면 현안인 행자부의 전자정부국 신설에 대해 표면적으론 게의치 않고 있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다. 정통부는 전자정부 업무를 주관해온 정보화기획실의 역할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착수하는 등 사실상 비상사태에 돌입했다는 게 관가의 시각이다.
◇정통부에 미칠 여파=행자부가 전자정부국을 신설해 정보화 업무를 확장하면 정통부는 기존 정보화기획실 업무 중 상당부분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행자부가 구상중인 전자정부국은 종전 전자정부서비스 주관업무와 더불어 인프라(통신네트워크·보안) 구축·관리를 총괄하는 모양. 비록 국가기관에 제한되더라도 정통부의 주력 업무였던 통신과 보안 정책 중 일부를 넘겨줄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통신보안의 경우 지난 1·25 인터넷대란 이후 국가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정통부에 정책관할권의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행자부 계획대로 조직개편이 단행되면 국가재난재해 관리업무와 함께 소위 사이버재난 정책권도 아우르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통부 박재문 정보화지원과장은 “아직은 행자부 내에서도 방향만 있을 뿐 조직·운영기금 등 구체적인 안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행자부와 역할분담을 어떻게 할지, 내부적인 대응방침은 어떻게 수립할지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행자부와의 구원=행자부와 정통부의 갈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통부는 정보화에 대한 인식조차 열악했던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당시 산하기관이었던 한국전산원과 함께 전자정부사업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98년 정책관할권을 행자부에 넘겨줘야 했다. 이어 지난 2000년까지 관련 법개정 문제로 두 부처는 마찰을 빚어왔고, 결국 행자부의 의지대로 전자정부특별법이 관철되면서 정통부는 전자정부에 대한 욕심을 접어야 했다. 이때부터 정통부는 ‘지원부대’로 전락, 지금까지 지원업무에 제한된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조직개편 계획에 따라 행자부가 가장 먼저 지방·인사 업무의 분리 등 조직슬림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전자정부 관련 정책권은 행자부가 총괄하는 것으로 이미 관계부처와 청와대 간의 합의가 끝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통부 대응은=정통부 관계자는 “정통부 운영에 공백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 큰 틀에서 기능전환 등 업무조정이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행자부도 실질적인 조직신설을 위해서는 법 개정 등 다소 시일이 소요되는 만큼 시간을 두고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각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정통부가 뾰족한 대안을 강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년간 ‘정보화’ 업무만 관장했던 정보화기획실의 기능을 전환할 만한 다른 방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공론화하기 이르나 전자정부 분야는 아마 순수 기획업무로 축소하는 대신 국가정보화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기획 기능을 보강하는 식이 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