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출신의 공직 확대 방침을 대통령이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은 지난 4월 21일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행정 역시 전자정부 구축에 의해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과학기술 인재의 등용이 필요한 만큼 참여정부는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을 획기적으로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행정기관에 근무하는 1급 이상의 공무원이 9.7%에 불과하고 장·차관급에서도 이공계 출신이 드문 상황에서 그 같은 말이 나왔다. 기술 마인드가 있는 테크노크랫에 행정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행정의 투명성이나 효율성뿐 아니라 정책을 기획, 조정, 집행하는 데에도 이공계 출신의 전문가가 적당하게 있다면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나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고도 했다. 그런 인식에서 비롯된 노 대통령의 이공계 출신자의 공직확대 방침 천명은 환영받을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안건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상정하면서 공직 진출 확대를 통해 이공계대학 진학기피 문제를 풀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이공계 출신자의 공직 진출 길을 넓힐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더라면 더 좋았다. 마치 학생들이 이공계 대학을 기피하는 것이 공직에 진출할 길이 닫혀있거나 좁아서 그런 것과 같은 인상을 주어버린 것이다.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공직 진출의 길이 좁기 때문이라기보다 엔지니어나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높은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분위가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공계 출신은 직장에서 진급도 늦고 연구계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연구에 매달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지난 97년 IMF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지만 우선 순위를 차지한 것도 기술직이나 연구직이었다.
대학이 거대한 고시반으로 변하는 것은 비단 이공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나 직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의료계나 법조계를 원하고 또 자격증을 획득하려는 학생으로 캠퍼스는 넘쳐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공계에 공직 진출의 길을 확대한다고 하면 그들은 전공은 살리지 않고 고시공부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기업체나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공직으로 발탁되기만을 기대하란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스탠퍼드대학과 비견할 만한 인도에 있는 유명한 인도공과대학에는 지금도 수 십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다. 그 대학은 세계에서 유명한 회사나 연구소에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지 공직에 얼마나 진출했는지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미국의 대학 또한 마찬가지다.
고위 공직에 이공계대학 출신이 많은 예로 자주 드는 중국은 공산주의와 문화혁명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롯된 특수성 때문으로 그것을 보편화하기 어렵다. 이공계 기피 문제를 공직확대로 푸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님은 물론 그것의 본질적인 해결책에서 더욱 멀어지게만 할 뿐이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성장동력이 될 수밖에 없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꽃 피울 자기 전공에 충실한 전문인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공계 기피 문제와 공직확대를 연계시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 사농공상이라는 구시대의 잔재가 부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서 고급 관리도 엘리트이지만 엔지니어나 과학자 또한 그들 못지 않은 엘리트라는 사실을 마치 잊기나 한 것 같다.
◆박재성 논설위원 j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