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추진해온 하나로통신의 유상증자 안이 부결된 것은 주주기업간의 견해차이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의 파장이 개별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보면 하나로통신의 일대 주주인 LG가 하나로통신에 5000억 원의 증자를 통해 올해 중으로 갚아야 할 채무 3900억원을 조달하려던 것이 또 다른 대주주인 삼성과 SK텔레콤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된 것이다. 삼성과 SK텔레콤은 LG가 하나로통신의 증자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동의하지 않았고, 그것보다는 외자유치를 통해 하나로통신을 정상화하는데 더 주안을 두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LG가 하나로통신의 증자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것이나 다른 대주주들이 그것을 용인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각 업체들의 입장이 있으니 만큼 그것을 무어라 할 개재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정부의 사업허가를 받은 거대한 기간통신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이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하나로통신측은 외자유치를 재검토하는 한편 국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 하고 있지만 이번 증자가 무산됨에 따라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외자유치나 자금조달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또 LG는 하나로통신의 경영정상화와 유선시장 구조조정을 위해 유상증자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입장에서 크게 변화된 게 없고 SK텔레콤도 하나로통신의 안정성장을 위해 외자유치를 재추진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하나로통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엄청난 규모의 투자에 발목을 잡혀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하나로통신이 단기간에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자칫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곧 많은 초고속망 가입자에게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또 하나로통신의 임직원뿐 아니라 수많은 유관 회사가 입는 손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는 두루넷 등의 회생도 극히 불투명해질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기간통신 사업자로서 하나로통신의 부실은 일차적으로 그 회사에 경영책임이 있지만 정부의 책임도 없다고 보기 어렵다. 당초 정부가 통신역무의 적정한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고 사업권을 주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려 수년 동안 정부의 통신서비스 정책은 무선호출사업자나 유선사업자, 이동전화사업자 등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과당 및 중복투자를 경계하고 조정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통신을 공공재나 정부의 재산 중의 일부로만 보고 허가권을 내주는데만 급급하다 보니 이 같은 사태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연이은 통신사업자의 부실은 귀중한 국가재산의 낭비와 다름이 없다.
정부가 뒤늦게 통신시장의 유효경쟁 정책을 밝히고 후발 이동전화사업자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아도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국내 통신사업자간 건전한 발전을 위해 경쟁구도를 만들어 주는 것도 소비자들을 위해서 바람직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내 통신사업자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많은 통신사업자들이 국가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급변하는 통신환경 때문에 업계의 판도가 달라질 정도다. 이번 하나로통신 사태를 계기로 국가 기간사업인 통신분야를 경쟁력 있는 사업으로 재편할 수 있는 정부의 입장과 대책을 밝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