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거울속으로

 깊이 꿈꾸는 자는 항상 거울 앞에 서 있다. 거울은 나를 비추는 딱딱한 물이며, 사물의 꿈까지 드러내는 부드러운 은이고,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품 속에 감추고 있는 투명함의 불투명함, 그리고 불투명함의 투명함을 갖고 있는 존재다. 모더니스트들이 모든 사물 중에서 특히 거울을 사랑한 것은 그러므로 당연하다.

 “거울에는 소리가 없소/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오”라고 노래한 이상이나 “거울 속의 형상은 내가 아니더란 말이야. 아니지 외견상으로는 완전히 나였지. 그건 틀림 없었어. 하지만, 그건 절대로 내가 아니었어”라고 고백한 무라카미 하루키나, 모두 거울이 갖고 있는 자기반영성의 본질 앞에서 사유를 거듭한다. 거울 속에 거울이 있고 그 속에 또 거울, 다시 또 그 거울 속에 또 다른 거울이 있다.

 김성호 감독의 ‘거울 속으로’는 거울이 갖고 있는 현대적 상징을 충분히 활용한다. 그 상징은 너무 친숙한 것이어서 예술적 새로움이 생길 것 같지 않지만, 그는 거울에 비치는 존재와 그 앞에 서 있는 존재를 일치하지 않게 표현함으로써 자기분열의 이중적 모습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원인 모를 화재로 영업이 중단되었다가 재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백화점 화장실에서 여직원이 시체로 발견된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여직원의 이중적 모습, 거울 속의 여자와 거울 밖의 여자가 분리된 오프닝신은 섬찟한 공포를 안겨 준다. 거울 밖에 있는 현실 속의 나는, 거울 속에 비치는 환상 속의 나의 지배를 받는다.

 엘리베이터에서, 지하 주차장에서, 연쇄적으로 시체가 발견된다. 외부침입의 흔적은 없다. 그들은 모두 화재사건 이전에 총무과 직원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형사(김명민 분)와 전직 경찰 출신인 백화점 보안실장 우영민(유지태 분)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건현장을 배회하는 여인을 만나고, 그녀의 쌍둥이 언니가 화재로 죽은 총무과 직원 이정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울 속에 누군가 있다! 이 짧은 모티브에서 발전한 ‘거울 속으로’는 결정적으로 쌍둥이 자매까지 등장시킴으로써 자기분열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상징은 일차적이지만, 또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솜씨나 캐릭터 구축을 위한 쇼트의 짜임새는 엉성하지만, 자기분열의 이중적 화면만큼은 매우 커다란 효과를 발휘한다.

 결국 ‘거울 속으로’는 이미지의 싸움이다. 거울이 갖고 있는 상징을 더 발전시키지도 못하며 지루하고 산만하게 끌고 가지만 몇몇 분열된 거울 이미지들은 매우 위력적으로 우리들의 잔상에 오래 남아 있다. 그것이 ‘거울 속으로’를 보게 만드는 힘이다. 김성호 감독은 데뷔작에서 수직적 힘의 팽팽함으로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실력을 보여주는 대신, 살아있는 회화적 이미지로 자신의 연출세계를 보여준다. 물론 유지태나 김명민처럼 능력있는 배우들에게서 최상의 연기를 뽑아내지 못한 것도 연출의 잘못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