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메이션코리아 이장우사장(4)

 인간 세상의 모든 일들이 새옹지마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오늘의 행운과 성공이 미래의 실패로 연결되기도 하고 오늘의 실패와 좌절이 오히려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을 통해 종종 경험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국 생활, 소위 집과 차가 제공되고 급여 외에도 가족을 위한 생활비가 별도로 지급되는 좋은 근무환경이었다. 한동안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지만 95년 11월 내가 속했던 데이터 스토리지 사업본부와 다른 몇 개의 부서가 외부에 같이 매각된다는 뉴스를 듣고 나는 적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으로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에 얼마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의 미래, 앞으로의 보직, 나의 상사 그 어느 것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의 연속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궁 속에서와 같은 시간이 몇 달 지속된 이후 미국 본사로부터 이메이션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심 만약에 아니 혹시나 하는 기대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미국 경영자들이 생각하는 사장 후보자의 자격 요건은 나의 직급과 경력을 훨씬 넘는 수준이라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나를 후보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 스스로를 후보로 추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표까지 내겠다는 굳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3M의 국제담당 부사장은 내가 이메이션으로 옮기지 않으면 3M에서 좋은 보직을 주겠다고 비공식적으로 제안을 해왔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이메이션의 국제담당 데이브 웽크 사장에게 나의 소신과 신념을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예상대로 답변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매일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기회는 올 것이라고.

 결국 기다리던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e메일을 보낸 지 한 달 정도 후에 전화 인터뷰가 이뤄졌고 일은 예상보다 더욱 순조롭게 진행됐다. 미국 3M에 근무하는 많은 미국 동료들이 나에 대해 호평을 해준 덕이었다.

 96년 2월 내가 이메이션코리아 사장으로 발령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용기 있는 e메일 한 통과 그 동안 쌓아 놓은 인맥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나의 확고한 결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벌써 만 7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회사를 창립하고 정신 없이 일에 빠져 뛰어다니다 보니 그 일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느껴진다.

 jwlee@ima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