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도서를 매개로 한 민간차원의 남북 교류협력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IT분야 서적들을 북측에 제공해온 가운데 조만간 분단 사상 최대규모인 수만권 가량의 IT관련 도서가 북측으로 반출될 전망이다.
이같은 남북간 IT 도서 교류는 향후 반세기 넘게 단절돼 온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남북 IT 협력사업에 있어서 기술용어 차이와 IT 표준화의 심각성, 정보격차 문제 해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IT도서 교류 가속페달=통일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종합출판미디어사를 표방하고 있는 영진닷컴(대표 이문칠)은 회사 관계자 2명이 최근 방북, 북한의 최대 사회교육기관인 인민대학습당측에 인터넷 및 기술 관련 서적 8만권 가량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도서협력사업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영진닷컴은 이르면 다음달 말까지 도서 8만권을 북측에 반출하게 된다. 영진닷컴이 인민대학습당에 제공하게 될 서적은 컴퓨터일반·운용체계·프로그래밍언어·데이터베이스·멀티미디어·웹디자인·그래픽 등 전문서적과 일반 단행본들로 구성될 전망이다. 영진닷컴측은 또 한국어판 IT관련 서적의 번역 작업을 인민대학습당측에 의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건평 10만평 규모의 인민대학습당은 각종 강의실과 컴퓨터 실습실, 열람실 등을 갖추고 도서 열람·대출 및 정보과학기술강의, 번역, 과학도서 출판, 전자매체 출판·보급 등을 하고 있는 북한내 명실상부한 최대 학습전당이다. 3000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문헌검색과 자료를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 2000년 3월부터 북한의 조선콤퓨터쎈터와 공동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는 삼성전자도 각종 IT 전문 도서를 조선콤퓨터쎈터에 전달해 왔다. 북한의 최대 IT 연구개발기관인 조선콤퓨터쎈터는 삼성전자가 제공한 책들로 도서관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북한의 2대 IT연구개발인 평양정보쎈터와 IT기술 공동 연구개발 합의를 체결한 포항공대의 경우, 지난해부터 공동으로 연구개발 중인 가상현실(VR) 분야를 비롯해 컴퓨터그래픽스·자바·컴퓨터 구조·XML·ASP 관련 전문 서적들을 수차례에 걸쳐 직접 전달한 데 이어 연내 추가 전달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찬모 포항공대 총장은 “IT 도서 교류가 양측의 지식 수준을 같게 함으로써 공동 연구작업을 용이하게 하고, 남측의 책이 북에 많이 보내짐으로써 기술용어 차이 해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01년 4월 평양정보쎈터가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측 대북 IT전문가들의 모임인 통일IT포럼에 IT전문 도서 기증을 정식 요청해 왔다. 따라서 통일IT포럼은 1차로 평양정보쎈터가 기증을 요청해온 컴퓨터·네트워크·프로그래밍·멀티미디어·서체·코드 관련 200여종의 IT 전문도서 1000권 가량을 수집해 평양정보쎈터측에 전달했으며, 향후 추가로 IT 도서를 추가 전달하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북측에 전달된 도서는 1차적으로 평양정보쎈터의 연구원들에게 보내져 소프트웨어 개발 등 현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의미와 효과=IT분야 도서 교류는 남과 북이 서로 원하는 실질적인 정보 제공 효과가 있고 남한 IT 추세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어서 IT 교류협력 확대에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서교류를 통해 남북한 IT전문가들과 젊은 학생들 사이에 나타나는 기술적·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것도 기대되는 효과다. 또한 도서 교류가 지속되면 남북 IT교류 과정의 시행착오와 교류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중장기적으로 남북 IT협력 확대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남북IT합작사인 하나프로그람센터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문광승 하나비즈닷컴 사장은 “남북 교류 초기단계인 만큼 서적이나 정보과학기술 발행물의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측과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개발 협력사업을 진행중인 다산네트웍스 남민우 사장은 “반세기 분단 깊이만큼이나 남북은 서로 다른 기술방식과 언어정보처리 환경을 갖고 있다”며 “남북간 균형적인 IT 분야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IT도서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