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융합기술` 전쟁](2)美NASA 에임스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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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사태 이후 미국 정부는 본토 안전국(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을 창설하면서 과학기술 우선순위 및 정책방향에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했다.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 보좌관인 존 마버거는 “9·11테러로 과학기술의 역할이 변화돼 테러리즘에 적극 대처하는 방향에 최우선을 두게 됐다”며 “연구기관은 테러를 피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교육과 연구의 사회학적인 개선효과를 가져오는 균형적인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이런 정책에 맞춰 ‘생화학전 방어(bio-defense)’와 휴대형 바이오칩 등에 대한 연구개발 및 시장수요가 급증했다. 특히 탄저균 소동 이후 수요가 극대화됐으며 이를 정책에 적극 반영해 기술 분야간 융합이 가속화됐다.

 미국의 올해 총 R&D 관련 예산 요구액은 1118억달러. 작년대비 86억달러 증가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예산증가의 대부분이 바이오 디펜스 및 연관 분야에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조에 맞춰 융합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이용, 국토 방위는 물론 우주개발에 응용을 선도하고 있는 미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연구센터에서 융합기술 연구 성과를 확인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융합 마인드가 경쟁력=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모팻필드에 위치한 나사 에임스연구센터는 이런 기조를 바탕으로 무엇보다 기술 개발은 물론 융합기술에 대한 마인드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기존 과학자들에게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차세대 과학자와 엔지니어에게 융합기술에 대한 가치관을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미 정부의 R&D 정책을 정확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단순히 국가 연구기관이 기술개발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에 대한 과학문화 확산에도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나사 에임스연구센터는 이에 따라 여름방학을 이용해 실리콘밸리 부근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융합기술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초빙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과학과 기술개발에 관심이 높은 학생들에게 서로 다른 기술에 대한 이해와 협력에 대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연구자를 양성하기보다 서로 다른 기술에 대한 이해와 이를 활용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메이어 판 나노연구센터장은 “이 프로그램은 어린 학생들뿐만 아니라 IT·BT·NT 등 저명한 과학자들에게 융합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사의 융합기술=‘생각하는 우주선’을 개발한다. 나사는 운석에 의해 우주선이 상처를 입어도 혼자서 고칠 수 있는 재료를 개발, 우주선을 고도로 제어하는 바이오컴퓨터 개발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융합기술을 이용해 가볍고 튼튼한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 발사비용을 대폭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주선에 장착될 컴퓨터와 각종 실험기기의 성능향상도 노리고 있다. 1초에 1000조 회의 연산이 가능한 ‘페타 플로프 슈퍼컴퓨터’ 연구를 비롯해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이렇게 되면 우주선과 위성을 유도하는 지상관제용 컴퓨터를 고성능화할 수 있다. 관제용 컴퓨터는 우주선의 궤도와 속도를 계산하고 관측기기의 데이터를 엄청난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초고속 계산이 가능하게 되면 우주선과 위성의 부담을 줄여 우주선을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나사는 또 측정기기에 사용하는 센서개발에도 열중하고 있다. 우주공간에서 탄소나노튜브를 장착한 탐침으로 생명체의 흔적을 탐사할 수 있는 시대를 기대하고 있다. 단백질 나노튜브를 이용해 극미세 패턴을 형성하는 것에서부터 나노 스케일의 구멍을 이용해 DNA와 RNA를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 우주에서의 실험을 가능케 한다는 전략이다.

 

 ◇융합기술의 인프라=에임스연구센터에서는 각 분야에 흩어진 과학자들의 능력을 하나로 모아 융합기술의 결정체를 만드는데 실리콘밸리 만한 곳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리적인 인프라가 융합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또 다른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나사는 인근의 스탠퍼드와 UC버클리 대학에서 인재를 수급하고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첨단기업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나사는 단순히 실리콘밸리의 위치적 장점 외에도 실리콘밸리를 지배하고 있는 발전 지향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융합기술 인프라에 빼놓을 수 없는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실리콘밸리=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나사 `메이야 메이어판` 나노연구센터장> 

 “미국과 일본, 한국 모두 융합기술 연구개발 전장의 똑같은 출발선에서 서 있습니다. 선진국 중심의 기술 주도권을 아시아는 물론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융합기술에 있는 것이지요.”

 나사 에임즈 연구센터에서 나노 연구의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메이야 메이어판 센터장은 융합기술은 어느 분야보다 더 평등한 상황에서 경쟁이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백만 배 이상의 컴퓨터 효율을 증대시키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10배 이상의 대역폭을 갖는 초고속통신, 소형 대용량 정보저장장치, 저전력의 집적화된 나노센서, 양자 컴퓨팅, 디스플레이 기술의 패권은 어느 나라가 갖게 될까요.”

 그는 전 세계에서 융합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방대한 규모로 이뤄지고 있지만 성공적인 기술 개발과 산업화를 위해서는 산·학·연 협력관계의 증진과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IT·BT·NT의 융합기술은 ‘쿨 테크놀로지’임에 확실하다는 메이어판 센터장. 그는 이 기술을 어떻게 이용해 ‘핫 프로덕트’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융합기술을 제품으로 전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꾸준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어떻게 참고 견디느냐가 성공의 관건입니다.”

 그는 성공적인 제품 개발을 위해 대기업과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런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들이 투자자들의 과도한 압력에 쓰러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차세대 과학자와 엔지니어 양성 측면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양성입니다. 단순히 좋은 기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는 대학과 대학원이 융합기술을 연구할 차세대 과학자와 엔지니어 양성을 시작해야 할 단계입니다.”

 그는 나사는 서로 다른 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융합기술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데 전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융합기술의 방향을 제시하고 우수한 과학자로 키우는 것이 핫 프로덕트를 만드는 밑거름이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당장 무엇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장 이른 시간에 융합기술을 발전시키면 기술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에 융합기술에 대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어느 나라가 미래의 과학자에게 어떤 투자를 하는지에 따라 10년 후 연구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입니다.”

 그는 융합기술의 핵심은 정보기술과 바이오, 나노 등 각 요소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진 인재양성이며 이들에 대한 투자가 앞으로 융합기술 전쟁의 승전국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