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체인 A사의 우수협력업체인 B사의 사장은 최근 중국 대형 가전업체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한국 대형 전자업체의 디지털가전 회로도와 신제품 개발계획 등 기술정보를 넘기면 대규모 부품수주 계약을 맺겠다는 것이다. B사 사장은 “경기가 나빠 이 제안이 너무나 달콤했지만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중국이 한국 부품 및 IT 산업기술을 습득, 기술강국 입지구축에 발벗고 나서면서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CCC인증이 기술유출의 새로운 경로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CCC제도를 활용, 신제품의 핵심정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CCC인증은 기술유출 통로=중국정부는 방대한 자국 시장의 잠재수요를 내세워 ‘나홀로식’ 품질인증제도를 고집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인증신청서류를 접수할 때 기술과 밀접한 회로도·구조물 등 서류를 강하게 요구, 경직된 형태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산업기술시험원 이기석 연구원은 “제품구성에 대한 서류를 제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러나 일본 등 선진국은 제조업체가 기판패턴 등 노하우가 담긴 서류제출을 원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제안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우리 중소업체들이 서류를 제출한 후 현지에 체류하지 않고 인증획득만을 대기하는 과정에서 인증기관 또는 시험기관에서 중국 경쟁업체로 해당 서류들이 손쉽게 넘어갈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것. 물론 일본이 한국에 기술유출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처럼 우리도 과거 일본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특성상 환경이 우리와는 다르다. 즉 해외업체의 기술유출을 차단하는 사회적 보장시스템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 게다가 중국이 CCC제도를 새롭게 시행하면서 인증업무가 적체되고 있어 인증기관과 시험기관의 수적인 증가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중국정부가 향후 이들의 활동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해외업체의 기술유출을 막는 데 적극 나설지에 대해선 의문이란 지적이다.
◇기술유출에 고민하는 업체들=부품 및 IT업체들은 CCC인증으로 곤혹스럽다. 중국에 진출하자니 6개월내 복제 제품이 나올 정도로 기술복사 능력이 뛰어나고 포기하자니 중국시장의 규모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전자부품연구원 양승강 실장은 “중소 부품 및 IT업체를 대상으로 컨소시엄을 구성, 중국시장 진출을 진행하고 있지만 도면노출에 따른 기술복제 우려감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례로 지난해 중국 TCL·ZTE 등의 중계기 공개입찰에 국내 업체들이 가격·규격 등 모든 서류를 제출한 이후 올들어 중국의 이동통신용 중계기 기술력이 급속하게 발전, 국내 기술유출에 따른 피해사례로 부품연구원측은 보고 있다.
덱스터커뮤니케이션 한 관계자는 “케이블TV망 잡음제어기를 판매하기 위해 현재 CCC 인증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복사품 방지를 위해 중국에 특허도 출원해놓고 있지만 실제 법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업체의 경우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현지에 공장을 직접 설립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미래테크는 현지업체와 함께 합작형태로 내장형 안테나 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중국정부가 해외업체들이 자국에 현지 기지를 둘 경우 인증제도 등 각종 규제를 느슨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
양승강 실장은 “일본·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 자국 업체의 중국시장 개척지원을 위한 단체가 많이 진출해 있다”며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국내 업체의 중국 진출에 필요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 기술유출 우려를 불식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