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다매 No! 이젠 고리다매

공급과잉에 출혈경쟁까지…수익성 악화 ERP업계

 국산 전사적자원관리(ERP) 업계가 정부의 중소기업 IT화 지원사업을 통해 축적한 기술과 구축경험을 발판으로 내수 및 수출시장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관련 업체들이 중소기업 중심의 박리다매형 영업에서 탈피해 각자의 전문성을 강화한 ERP 템플릿(프로그램서식)을 앞세워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 고객으로 영업을 집중하면서 중견중소비즈니스(SMB) 시장공략에 나선 SAP코리아, 한국오라클 등과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

 또한 국산 ERP의 준거(레퍼런스)사이트가 늘어나면서 한국의 IT산업을 벤치마킹하는 중국, 동남아권 수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준거사이트 확보를 위해 출혈경쟁이 불가피했던 ERP 업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 정부의 정보화 지원사업의 영향으로 혼란에 빠진 ERP 유통구조에도 새로운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내수=지난 2년여간 국내 ERP 업계는 보급확산에 초점을 맞춘 출혈경쟁을 불사, 시장의 적정 가격구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또 1억원을 상회하던 중소기업용 ERP 공급가격이 평균 4000만원 이하로 떨어지면서 고객이 폭증, 일부 업체의 경우에는 회사의 사후관리능력(인력과 시간)을 벗어나는 고객수로 인해 중소기업 정보화 프로젝트를 부실화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후 국산 ERP의 수익구조가 취약해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순. 일부 업체는 아예 존폐위기로 내몰렸다.

 국산 ERP 업체들은 이같은 위기에서 벗어날 대안으로 중견기업 고객을 확보해 매출과 수익을 높이고 안정적인 사후관리서비스로 프로젝트를 내실화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국산 업체들이 전자·통신·제약분야의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집중하면서 SMB 시장에서 SAP코리아, 한국오라클과 대등한 경쟁관계를 형성해 주목된다.

 김영수 비디에스인포컴 사장은 “최근 연매출 2000억원대 기업인 대림자동차(이륜차제조)의 ERP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SAP·오라클과 경쟁하고 있다”면서 “그만큼 국산 ERP 업체의 전문역량이 향상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디에스인포컴은 앞으로 인천·울산지역의 연매출 1500억원 이상의 자동차부품과 전자음향기기 업체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영림원소프트랩(대표 권영범)도 광동제약·에스텍 등 제약 및 전자부품분야의 중견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했으며, 뉴소프트기술(대표 김정훈)은 KTFT·텔슨정보통신·유니모테크놀로지·경인전자 등 전자통신분야에서 국산 ERP의 성가를 높이고 있다.

 코인텍(대표 서진구)도 넥센타이어·코리아오토글래스·태양금속공업 등 매출 1000억∼2000억원대의 중견 자동차부품 업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ERP 사업의 내실을 다지고 있다.

 ◇수출=영림원소프트랩은 SK케미칼과 삼양사가 화학섬유사업을 분리해 통합한 휴비스의 중국법인의 ERP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을 발판으로 현지진출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또한 이 회사는 오는 연말까지 일본의 중견 시스템통합(SI) 업체와 함께 현지 중견기업용 ERP 시장에서 첫 고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인텍도 국내에서 중견기업 레퍼런스를 확보한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 미츠이 계열 IT회사(MKI)를 통해 현지 ERP 시장진출의 초석을 마련했다. 한국하이네트·소프트파워·KAT시스템도 국내 ERP 구현사례를 내세워 중국을 비롯해 태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지로 진출할 계획이다.

 김현봉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ERP협의회장(한국하이네트 대표)은 “이제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용 국산 ERP 기술경쟁력을 배양할 때”라며 “ERP협의회를 창구로 삼아 정부에 적극적인 기술개발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