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의 국내업체 역차별 논란 배경에는 수요자 측면에서의 망 관리 효율성과 공공기관 차원의 국내산업 지원이라는 두가지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동일제조사 원칙이 사실상 아무런 위법요소가 없음에도 관련 업계에서 비난 여론이 팽배하고 또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나름의 논리와 이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개요=경찰청은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경찰 종합정보 체계 구축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매년 전국 규모로 네트워크 확장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올해도 경찰청은 이번 사업의 일환으로 지방경찰청을 위한 중형라우터 30여대, 산하 경찰서용 L2스위치 1900여대, 산하 파출소용 소형라우터 1700여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현재 정보통신과 종합정보계 주관으로 최종 사업계획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앞으로 예산심의를 거쳐 다음달쯤 조달청을 통해 경쟁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관리 효율성이 먼저다=경찰청은 이번 네트워크장비 도입 사업에서 동일제조사 원칙을 내세운 것은 장비 설치 및 망 관리의 효율성 때문이란 설명이다. 장비간 호환문제는 물론 각기 다른 회사의 장비가 설치됨으로써 향후 네트워크 관리에 애로가 많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여러 기종의 장비가 혼용될 경우 유지보수 및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며 “관리상의 문제는 곧 안정성 문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단일업체의 장비를 도입·운용하는 것이 이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기술적 문제 없다=국내업체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외산장비에 대한 근거없는 선호에서 나온 것일뿐 장비 혼용에 따른 문제는 없다고 강조한다.
국내장비업체 A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국산장비가 외산장비와의 호환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기 때문에 호환문제는 없으며 유지관리의 경우도 통합관리를 지원하는 각종 네트워크 관리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업체 관계자들은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무조건 해외 유명업체의 장비를 도입해야 안전하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나온 명백한 국내업체 역차별이라고 강조했다.
◇해결점은 없나=사실 국내업체 역차별 시비는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잊혀질만 하면 한번씩 불거져 나오는 문제로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수요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장비를 도입하는 것을 놓고 외부에서 간섭하기는 힘든 게 현실이고 복수업체의 장비로 망을 구성할 경우 관리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국산장비를 제쳐두고 30%에서 최대 2배 가량 비싼 외산장비를 도입할 경우 예산낭비도 우려된다.
이번 사업의 경우는 특히 국내업체에 공정한 평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내업체 역차별이라는 논리도 성립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국산제품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만큼 국산업계의 개선 노력도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섣불리 국산장비를 도입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공공기관 전산 실무자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