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23)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모리셔스(상)

 수도 포트루이스에서 택시로 20여분 달린 뒤 수소문 끝에 한국 인터넷청년봉사단(팀명 MIT모리셔스)의 주 활동 근거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3시(현지시각)였다. 한국을 출발한 지 꼬박 25시간의 여정 뒤에 만난 한국 사람들이라 반가움이 컸지만, 아프리카에 속한 작디 작은 섬국가 모리셔스에서도 수도가 아닌 변두리마을 ‘보바셍(Beau Bassin)’까지 비집고 들어가 둥지를 튼 봉사단의 질긴 근성같은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더욱 컸다.

 

 염진수 팀장(33)을 비롯해 윤태한(25)·나은영(23)·김지영(23)씨 등 4명이 한팀을 이룬 봉사단은 때마침 시작된 컴퓨터교육을 위해 20명 안팎의 현지인들과 뒤섞여 바쁜 발놀림을 하고 있었다.

 특히 MIT팀의 내부 역할분담에 따라 IT메신저(정보기술 전파자)의 역할을 맡은 윤태한·나은영씨가 컴퓨터교육에서 중심역할을 했다. 윤씨는 20여대의 펜티엄 컴퓨터가 갖춰진 대형 실습실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고, 나씨가 강의중 현지인 사이를 돌며 강의내용과 의문사항에 대해 일일이 보충지도를 하는 형태를 띄었다.

 컴퓨터수업은 오후 3시 초급반 수업과 7시 중급반 수업으로 나눠 하루 두차례 진행됐다. 초급반에서는 컴퓨터 켜기·끄기부터 시작해 파일의 복사·저장 등의 기초내용을 가르쳤고, 중급반에서는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숍 등 실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집중 강의가 이뤄졌다.

 여느 한국의 컴퓨터 교실처럼 배우고자 하는 수강생들의 열의도 컸고 호응도 좋았다. 단지 무대를 아프리카 외딴 오지마을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데 현장을 찾은 기자는 보바셍과 같은 소도시에 펜티엄 컴퓨터가 20여대씩이나 있는 교육장이 설치되기까지의 배경이 궁금했다. 자의든 타의든 일개 마을에 그 정도의 깔끔하고 잘 정비된 시설을 만들 수 있었다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도 정보화 인프라가 그다지 뒤처진 수준은 아닌 셈이 아닌가.

 하지만 이같은 의문은 비교적 쉽게 풀렸다.

 대한민국 2003 인터넷청년봉사단 MIT팀이 활동하고 있는 ‘보바셍 교육센터’는 일본이 아프리카·동남아·남미지역을 대상으로 줄기차게 진행하고 있는 국제지원프로그램(ODA:Official Development Aid)의 한 줄기에서 만들어진 시설이었던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남의 둥지에서 알을 까는 뻐꾸기 신세’가 되어버린 듯한 봉사단의 활동소감이 궁금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염려에 대해 염 팀장은 비교적 당당한 어조로 소회를 털어놓았다.

 “한국의 봉사단은 한달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잠깐 왔다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일본은 좀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이런 시설과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이 일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사를 위한 활동이든 물리적 시설이든 현지인에게 이롭게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남이 만든 설비라 해서 배타적인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이 만든 시설에서 우리는 충분히 우리 목적에 맡는 활동을 벌이고 현지인들이 따라와주면 우리 시설도 되는 셈이니까요.”

 한번 불거진 ‘국제봉사의 개념 및 방법론’에 관한 문제는 현지 취재기간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떳떳하게 제공한 설비와 시설이 10∼20년 동안 그 나라 어린이·청소년들과 함께 성장하며 연륜을 쌓고, 그곳에서 매년 파견되는 봉사단들이 수년 동안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현지인 교육에 접근한다면 그만큼 큰 결실이 얻어지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서였다.

 다음날인 7월 24일 오후.

 보바셍 교육센터에는 한글 읽는 소리가 길 밖 담 너머까지 흘러 넘쳤다. ‘김치’ ‘학교’ ‘안녕하세요’ 등 귀에 익은 한국말이 낯선 이국인의 입에서 막힘 없이 튀어나왔다.

 한국문화 메신저인 김지영씨의 한국어 수업은 오후 5시와 6시에 두번 열렸다. 일과가 끝난 주부나 직장인들이 되도록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한 시간적 배려 때문이다.

 평생에 한번 써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한국말을 배우는 매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배움’에 열광하도록 하는 것일까.

 한국어 수업에 참석한 현지인 애너벨양(18)은 한국말을 배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교육센터에서는 1년 내내 여러가지 교육이 진행되지만, 한국어는 전혀 생소할 뿐더러 직접교육도 처음 접해봅니다. 그래서 더 신선하고 발음 및 문자가 우리 것과 완전히 다른 형태라 더 재미있습니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어려서부터 기본적으로 익히는 현지인들의 언어감각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듯했다. 전국민의 70% 가량이 3개국어를 구사하는 그들은 한국어를 낯선 언어를 탐험하는 것처럼 즐기고 있었다.

 한국봉사단이 진행하는 각종 수업에는 매시간 현지인 보조원(헬퍼)들이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현지어인 크레올어로 설명하고, 교육수준에 맞게 강의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현지인 헬퍼들은 모리셔스 정부가 봉사단 활동을 위해 파견했거나, 봉사단들이 현지 편의를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 아니다. 전적으로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봉사단의 활동은 현지인에게 훨씬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듯했다. 헬퍼들이 이방인에 대한 낯선 경계감마저 없애주는 역할을 수행했던 셈이다.

 모리셔스에서의 취재 마지막날인 7월 26일 밤. 교육센터에는 조촐한 ‘파티’가 펼쳐졌다. 원래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었지만 ‘한국문화의 밤(Korean Culture Night)’ 행사가 오후 6시부터 진행됐다.

 한국을 소개하는 영상자료가 상영되고, 현지인의 노래공연과 양국의 문화이벤트 등이 잇따랐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에는 양국 음식을 각자가 준비해와 조촐한 음식 파티까지 열었다.

 한국과 모리셔스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다. 함께 웃고, 춤추며, 부대끼는 그 모습에서 ‘코리아’는 이제 즐거운 추억의 메시지로 그들의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인터넷봉사단도 누가 등을 떠밀어 그곳에 간 것이 아니고, 현지인 수강생들도 누구의 강요나 주문에 의해 그곳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그들 양쪽은 스스로의 필요와 의지로 만나, 모든 것을 나누고 있었다.

 문명의 마지막 미개척지로 남은 아프리카. 그곳에서도 인도양쪽으로 1500㎞나 떨어져 있는 외딴섬 모리셔스. 그 오지에 7월 14일부터 8월 7일까지 25일 동안 불어닥친 ‘코리아 열풍’은 작은 섬 전체를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MIT모리셔스팀이 처음으로 그 땅에 뿌린 작은 씨앗이 열대의 야자수처럼 푸르고 곧게 솟아오르길 기대해본다.

 <모리셔스=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 모리셔스는 - 인구 115만명 섬나라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인도양상의 대형 섬 마다가스카르에서 동쪽으로 800㎞나 더 떨어져 있다. 수도는 북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포트루이스이며, 국가 전체 면적은 1860㎢에 불과하다. 인구는 총 115만명 정도이며 이 중 인도계가 약 68%를 차지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와 프랑어를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다. 우리나라와는 지난 71년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현재 대사업무는 주 케냐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화폐단위는 루피(Rupi)로 1루피는 원화 약 44원의 가치를 갖는다. 화산섬이라는 특성과 섬의 규모, 휴양지라는 성격 등이 맞아떨어져 우리나라 제주도와 자주 비견되며, 지난해 제주도에서 열린 세계섬문화축제에 모리셔스 대표단이 초정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졌다. 한국에서의 직항로는 없으며, 홍콩과 싱가포르발 직항로도 사스 여파로 막혀 있는 상황이다.

 

 ◆ 인터뷰 - 현지 `보조원` 장 노엘 도미니크 

 “2002년 한국 정보올림피아드에 참석했던 경험을 인연으로 한국봉사단이 이역만리 우리나라까지 찾아와 정보화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MIT팀 활동 전 기간 동안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하며 헬퍼로 활동한 도미니크군(19)은 그래도 한국을 잘 아는 청년이다. 정보올림피아드에 모리셔스 대표단의 일원으로 출전, 한국이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를 가진 나라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바 있다.

 “한국에서처럼 인터넷을 자유롭고 빠르게 쓸 수 있기를 바라지만, 마냥 그것만 기대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선은 국민들의 인터넷 이용 의욕을 높이고, 컴퓨터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도미니크는 이번 봉사활동 참여 이전부터 1주일에 화·목요일 두차례 자신의 컴퓨터 지식을 주변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맹렬 컴퓨터 전도사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기능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주변사람들과 나누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다.

 “개인적으로 매일 다이얼업 방식으로 20∼30분씩 인터넷에 접속하지만 너무 비싸 부담이 큽니다. 이번 한국봉사단의 활동을 계기로 일반 국민들의 정보화 욕구가 높아지고, 정부도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전자상거래 관련 사업까지 벌이고 있는 어엿한 인터넷사업가 도미니크. 꼭 다시 한국을 방문해 인터넷 및 컴퓨터 관련 전문지식이나 경험을 쌓고 싶다는 그의 눈빛에서 모리셔스의 밝은 정보화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