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조넌트(resonant)’
이 낯선 단어는 일본 통신 공룡 NTT그룹의 중장기 비전이다. ‘소리가 울리퍼지다, 공명하다’란 뜻을 지닌 레조넌트는 쉽게 말해 NTT판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전략이다. NTT가 얘기하는 ‘레조넌트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광을 통해 브로드밴드와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해 누구나 양방향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세상’을 일컫는다. 레조넌트 망전략의 핵심은 ‘광통신망(FTTH)’이다. 통신망의 중심축을 일반전화망에서 FTTH로 옮겨놓겠다는 것. NTT가 내건 목표는 올해 FTTH 가입 100만건, 2005년 520만건이다. 이를 위해 다음달 ‘FTTH 기반의 고화질 TV전화(광TV전화)’를, 10월에는 ‘FTTH 기반의 IP전화(광IP전화)’를 개시한다.
NTT의 레조넌트 전략에는 독점사업자의 고민이 스며있다.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일반전화망을 스스로 팽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IP전화 진출이 단적인 예다. NTT동·서일본은 일반전화 6000만 가입 세대를 가지고 있는 사실상 독점업체다. 그런데 스스로 값싼 IP전화를 제공하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든다. 일례로 일본의 은행 빅3인 UFJ는 2006년까지 IP전화로 전면 전환해 연간 10억엔(100억원)을 절감할 계획이다. 그만큼 NTT의 수입이 줄어드는 셈이다.
왜 독점사업자가 ‘자승자박’일지도 모를 ‘결단’을 내려야했는가.
첫번째 이유는 ISDN에서 맛본 쓰라린 기억이다. 당시 NTT는 ISDN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ASDL 시장에서 주저했다. 틈을 타 소프트뱅크가 급성장, 1위를 빼앗아갔다. 또 다른 이유는 IP전화 업체들의 무서운 성장이다. 일본 IP전화는 가입자수 500만명을 넘어섰다. 내버려두면 질풍같은 기세로 NTT를 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전력계 업체들의 FTTH 시장 공략이다. NTT에 대항할 돈을 가진 이들은 FTTH를 통한 통신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쿄지역에선 ‘NTT동일본 대 도쿄전력’, 오사카지역에서는 ‘NTT서일본 대 간사이전력’ 양상의 격전이 이미 시작됐다.
공룡이 이제 변신에 나섰다. 목표는 ADSL판을 FTTH판으로 갈아버리는 한편 FTTH 시장에서 전력계 업체들을 밀어내는 것. 그러나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수익은 보장되지 않는다. IP전화는 태생적으로 제살깎아먹기로 전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FTTH 장악과 동시에 이를 활용한 신 수익원을 개척해야 한다. NTT는 시대에 순응하기 위해 뻔히 보이는 고행의 길을 선택했다.
NTT의 모험은 우리나라 KT를 돌아보게 한다. KT는 NTT보다 규모가 작아 변화에 유리하다. 또 정부지분이 45.9%나 남아있는 NTT에 비해 자유롭다.
그러나 FTTH와 IP전화에 관한한 KT는 오히려 더 무거워 보인다. KT 한 관계자는 NTT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NTT는 어쩔 수 없이 IP전화를 시작하는 것이며 KT는 그런 길을 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셈이다. IP전화 조기 상용화를 막아 일반전화 수익을 오래도록 누리겠다는 게 KT의 속내일지 모른다. 물론 돈이 많이드는 FTTH 투자에도 주저한다. 수익이란 잣대로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씁쓸한 대목은 경쟁하는 공룡 NTT와 그냥 안주하려는 공룡 KT의 앞날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앞서 치고 나가지도, 그렇다고 대세를 주도하지도 않는 공룡의 결말에 대한 우려다. 더구나 기후 변화를 애써 무시하는 공룡이 새로운 포유류의 태동을 막고 있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