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나타난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의 불황 속에서 일본 업체들이 차세대 장비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발판으로 대약진을 꾀하고 있다. 특히 올 매출 순위에서 일본 업체들은 라이벌인 미국이나 유럽 업체를 잇따라 따돌리며 90년대 후반 미국에 내주었던 헤게모니 재탈환 양상까지 보여주고 있다.
◇잇따른 정상 재탈환=일본 업체의 반격은 도쿄엘렉트론(TEL)이 올 1분기 매출집계에서 10여년째 1위를 지켜오던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AMAT)을 제치고 정상을 탈환하며 예고됐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세계 1위 장비업체였던 TEL은 90년대 엔고여파로 일본 반도체 업계가 함께 추락하면서 AMAT에 정상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 전문지 웨이퍼뉴스의 최근 집계 자료에 따르면 TEL은 올 1분기 11억68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 11억700만달러를 기록한 AMAT를 근소하게 따돌리고 정상탈환에 성공했다.
또 지난 13일 발표된 AMAT의 최근 분기(5∼7월) 실적이 10억5000만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LCD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TEL이 2분기 말부터 폭주하고 있는 장비주문에 힘입어 2분기 실적에서도 우위를 보일 것으로 점쳐진다.
올 1분기 니콘이 네덜란드 ASML에 내준 노광장비분야 정상을 되찾은 것도 핫이슈다.
미국 반도체 전문웹진 SBN은 13일 시장조사기관인 ‘더 인포메이션 네트워크’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니콘이 지난 1분기에 ASML보다 시장점유율에서 11%나 앞섰다고 보도했다. 10년간 노광장비분야의 정상이었던 니콘은 지난해 ASML의 매출의 57%에 그치며 정상자리를 내준 바 있다.
◇차세대 시장 승부수=일본 업체들의 약진은 불황임에도 차세대 장비 연구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은 데 있다는 평가다. TEL은 300㎜ 웨이퍼용 장비에 대한 R&D 투자를 세계 장비업계 최초로 시작했으며, 니콘이나 캐논 등 노광장비업체들도 올들어 193㎚의 극자외선(DUV)을 이용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반면 AMAT는 극심한 경영난으로 사업확장과 생산설비 업그레이드를 전면 유보했고, ASML의 제품 업그레이드가 더딘 상황이다. TFT LCD시장의 급부상도 일본 업체들엔 호재다. TEL이나 니콘, 캐논 등 일본 간판기업들은 반도체뿐 아니라 LCD에서도 핵심장비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 AMAT를 비롯한 미국 및 유럽 업체의 후발 LCD 산업국에 비해 유리한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업체들의 강세가 차세대 장비시장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LCD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점을 들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