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증권시장 통합 구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재정경제부가 마련한 ‘증권·선물시장 선진화 추진계획(안)’은 내년 말까지 증권거래소·코스닥증권시장·선물거래소 등 3개 시장을 주식회사 형태로 통합하지만 명분상 독립체제를 유지하고 공동의 청산·결제·전산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번 정부 추진안에는 시장통합후 조직구성, 운영방안, 기능재편안에다 특히 장외시장 통합 계획까지 들어있어 정부의 증시 구조개편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증시 선진화란 기치 아래 만들어진 정부의 통합안이 결실을 보기엔 여전히 걸림돌이 적지 않을 듯하다. 우선 통합방안 자체가 그동안 끈질기게 주장해온 각 시장별 특성과 상징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증권거래소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정부안을 보면 증권업계에서 그간 제기해온 코스닥의 독자성 확보를 위한 조치는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특히 효율성만 근거로 분할이 이뤄진 듯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증권업협회와 증권예탁원이 벌써부터 거센 반발을 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코스닥시장 운영권자인 증권업협회는 정부 통합안이 ‘코스닥시장 죽이기’라고 비난하고 특히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간 현·선물 통합과정에 희생양이 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증권예탁원도 정부안에 결사반대 입장이다. 특히 지난 20일 열린 공청회 행사가 유관기관들의 실력행사로 사실상 무산된 토론회로 격하되는 등 통합세부안 마련에는 앞으로도 많은 진통이 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증시는 자본주의의 꽃이고, 금융기법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금융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돼 시간을 허비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뒤로 밀리게 된다. 물론 시장에서 돌고 있는 의견에 불과하지만 그간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각 기관별 파워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다.
시장의 주인은 기업, 개인투자자다. 이들이 시장의 수혜자며 수요자다. 때문에 시장 주체자들의 의견을 묻고 이들의 입장에서 시장 개편방안이 확정돼야 한다. 백년대계를 보고 세워야 할 시장통합안이 혹시 파워게임에, 정치논리에 밀려 시장의 수요를 도외시한 채 쫓겨가며 처리될 경우 졸속안으로 남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세계증시에서 나스닥시장을 제외하고 코스닥시장만큼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시장은 없다. 경쟁논리가 없었다면 현재의 코스닥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만큼 통합시장에서도 철저히 시장별로 방화벽을 쌓고 경쟁체제를 적극적으로 살려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장별로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해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경쟁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제도적 독립성도 부여해야 한다.
또 통합된 상장기업 사업부와 코스닥기업 사업부는 철저히 차별화된 시장으로 특성을 살려야 한다. 다양한 시장의 수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거래방식과 상하한가 폭 등을 차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과 권한에 있어서 사업부에 대폭적인 이양이 필수적이다. 자율규제기능도 대폭 민간으로 돌려줘야 한다. 이름뿐인 자율규제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자율규제가 될 수 있도록, 외부 입김이 차단될 수 있도록 보호막과 함께 권한의 대폭이양이 이루어져야 통합시장의 기능 활성화에도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