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8년 공작기계 제조업체로 출발한 터보테크. 십수년이 지난 지금 터보테크를 공작기계 전문제조업체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820억원의 매출을 올린 터보테크의 공작기계부문 매출은 30%가 채 못된다.
국내 공작기계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96년 630만달러에 달하던 공작기계산업의 해외투자는 지난해 60만달러까지 급락했다. 해외투자의 증가로 5억6562만달러(98년 기준)까지 늘어난 금속공작기계의 수출 역시 작년에는 4억8000여억원에 그쳤다.
이른바 ‘기계 위의 기계’라 불리는 제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공작기계. 하지만 이 분야에 전력하는 업체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정통 공작기계 업체들은 최근들어 업종변경이 한창이다. 터보테크의 경우 지난해 매출의 70%가 휴대폰이었다.
◇왜 침체인가=80∼90년대 산업 고도화를 거치며 초고속 질주를 구가해온 국내 공작기계산업은 IMF 이전까지만 해도 수입선다변화 품목으로 지정돼 있는 등 정부의 보호 아래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내 수요가 급감하고 국내 공작기계의 최대 수요처인 대우,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공작기계산업 자체가 붕괴위기에 내몰렸다. 최근들어 CNC를 중심으로 공작기계의 국내 생산이 다소 회복되고 있으나 ‘왕년’의 영광은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같은 침체의 가장 큰 이유로 관련 전문가들은 공작기계산업의 지나친 내수의존을 꼽는다. 김재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공작기계산업은 자동차, 전자 등 수요산업의 생산수준에 의해 부침의 여부가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산업 자체가 자립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공작기계의 수출비중은 30%. 일본(77.3%)이나 독일(53.1%), 이탈리아(45.1%)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특히 자체 수요 충족을 위해 대기업 위주로 발전해온 ‘한국형 공작기계산업’의 기형적 태생이 우리 공작기계산업의 발목을 잡는 또다른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통적으로 국내 공작기계산업은 완성차 업체의 수요 충족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들에 의해 주도돼 왔다. 국내 최대 공작기계 업체로 꼽히는 대우종합기계는 대우자동차의 수입대체를 위해 설립·운영돼 온 회사다. 현대정공(현 현대자동차), 기아중공업(현 위아) 모두 모회사격인 그룹 내 완성차업체와 영욕을 같이 했다.
업계 관계자는 “판로가 보장돼 있는 이들 업체는 독자제품의 개발에 힘쓰기보다 해외 선진업체와의 기술제휴나 핵심부품 수입에만 치중했다”며 “그 결과 지금도 NC장치, 볼스크루 등 핵심부품의 90% 이상은 일본 등지서 전량 수입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안은 뭔가=기본적으로 국내 정통 제조업 자체가 점차 축소되는 상황에서 공작기계산업의 고성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이범구 터보테크 이사는 “제조업의 이동에 따라 공작기계산업도 중국으로 따라 옮겨야 할 판”이라며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표정이다.
결국 중국과의 경쟁 우위확보가 관건이다. 금속가공으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현 지역의 공작기계업체들의 경우 마그네슘 판금가공 기술을 새로 개발, 중국을 따돌리며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공작기계에 IT를 접목, 금형생산 공정을 획기적으로 줄인 캐논의 CAD 기술 역시 중국이 따라오기 힘든 테크닉이다.
김재윤 연구원은 “일본도 중국에 자국의 제조기반을 뺏기고 있기는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일본이 아니면 안된다는 이른바 ‘3신 전략(신소재·신공정·신제품)’으로 중국의 추적을 뿌리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KDI 전문연구위원은 “기술자립 능력배양과 새로운 수출기종 발굴이 가장 큰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핵심기술을 보유한 외국기업의 적극 유치 등이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외환위기 이후 내수 줄자 쇠락의 길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공작기계 산업의 생산·해외 투자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