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국가공무원법에 근거, 부처별로 규정한 ‘정원 및 사무 분장 규정’에 따라 행정직과 기술직이 갈 수 있는 직위는 엄격히 구분돼 있다. 행정직이 갈 수 있는 직위는 거의 모든 직위지만, 기술직은 일정 직위로 한정돼 있다. 특히 기술-행정 복수직위의 경우 행정직 우선으로 충원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가령 복수직 보직에 결원이 생길 경우 기술·행정직 모두를 대상으로 심사해서 승진시켜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순수행정직(행정단수직) 보직자를 복수직으로 이동시킨 다음 행정직 자리를 결원 상태로 만듭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행정직 중에서만 승진자를 선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중앙부처 한 고위직 공무원이 토로하는 현 복수직위제도의 고질적 병폐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자가 없어 보이지만, 이같은 공직사회의 폐해는 ‘복수직의 행정직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기술직들의 승진 및 보직이동은 늦어지게 되고, 고위직으로 갈수록 이공계 출신 기술직의 비중이 현격히 낮아지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행정직 중심의 공직사회에 이공계 출신 기술직 공무원이 갈 수 있도록 만든 복수직위제도가 오히려 기술직 공무원의 발목을 잡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술직들은 “이런 변칙적인 복수직위제 운용이 고착화된 상황 아래에서는 복수직위를 아무리 늘려도 별 의미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원인은 장·차관과 기획관리실장 등 고위직을 비롯해 총무과장 등 공직사회의 인사 라인이 주로 행정직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황윤원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여기에 고위 행정직들이 보직을 부여할 때 주로 써본 사람(행정직)을 임용함으로써 일종의 ‘관리능력의 용불용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무엇보다 행정단수-기술단수-행정·기술 복수로 이뤄진 현 직위분류체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직무특성상 전문성이 특별히 강조되는 직위임에도 행정직, 또는 복수직위로 돼 있거나 기술·행정 복수직위화해 기술직 기용의 문호를 열어도 되는 곳임에도 행정직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식·정보사회로의 진입과 행정 고도화로 인해 전문지식과 과학기술 마인드로 무장한 기술직을 필요로하는 공직사회내 행정수요가 급증, 현 직위 전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앞으로 정통부는 모든 보직을 복수직위화해 인문사회계와 이공계 출신이 모든 보직을 놓고 경쟁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