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복수직인가?’ 현재 공직사회에서 이공계 출신의 기술직들은 능력에 상관없이 갈 수 있는 자리가 제한돼 있다. 행정직만 갈 수 있는 자리에 비해 순수 기술직은 턱없이 모자라는데다 기술직과 행정직 모두 갈 수 있는 복수직위가 행정직위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직위는 글자 그대로 기술직이든 행정직이든 능력에 따라 선택할 수있는 직위임에도 불구, 현재 공직사회에서 복수직위는 행정직위에 가깝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행정수요를 담당할 기술직의 기용을 늘린다는 취지로 복수직위를 도입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복수직은 행정직의 인사 숨통을 트는 용도로 악용돼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공무원 조직의 폐쇄성과 승진체계, 그리고 행정직 중심의 ‘패거리’ 문화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공무원 조직상 복수직위 수가 적지 않지만, 행정직 출신들이 주로 그 자리를 꿰어차고 있다. 근무 경력에 따라 보직을 발령내다보니, 복수직 자리에 인력풀과 경력면에서 일천한 이공계 출신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경력이 많은 행정직이 많이 기용될 수밖에 없다. 실제 대전시의 경우 지방 3급 이상의 국장급 자리 10개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도시건설국장 단 1명뿐이다. 복수직위는 환경과 보건복지 등 2개 분야가 있지만 두자리 모두 행정직이 차지하고 있다.
복수직의 ‘행정직화’ 현상은 지자체와 중앙 정부가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밝힌 규정상 국·과장급 행정-복수직의 보직비율을 보면 행정직 57.8%, 기술직 9.3%이며 복수직은 전체의 32.9%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복수직을 차지하고 있는 직군은 행정직이 57.8%로 기술직 출신(42.2%)보다 월등히 많다.
이같은 현상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과장급은 복수직위에 기술직 비중이 43.9%인 반면 국장급은 35.9%에 불과하다. 중앙인사위의 2002년 말 자료에 따르면 기술직이 갈 수 있는 기술단수직과 복수직위에서 실제 기술직 점유율은 평균 85.3%. 그러나 2급은 32.4%에 불과하다.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일선 공직사회에서 복수직위제도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제기한 것도 이 때문. 중앙부처 한 4급(서기관) 관계자는 “5급 공채의 채용인원을 늘리고 직급별 기술직 쿼터를 도입하는 것도 좋지만, 복수직위의 기술-행정직간 형평성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복수직위제만 잘 운영해도 자연스럽게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복수직위제도의 운용의 묘를 살리면서 이공계 공직 진출을 늘릴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기술업무 비중이 높은 직위의 ‘기술직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복수직위에 대한 철저한 직무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복수직 중 과학기술적 업무성향이 강한 직위에 기술직을 우선 임용하는 것도 중요한 대목. 실제 현재 과학기술 관련 10개 부처의 직위 중 복수직은 60%에 육박한다. 즉 순수 행정직과 기술직을 합친 것보다 많다. 따라서 복수직위 확대에 앞서 실질적으로 기술직이 업무성격상 맞는 직위에 기술직이 차별 없이 임용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강 행정직-약 기술직’이라는 공직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감안할 때 단순히 권고사항만으로 복수직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 따라서 아예 복수직위의 일정 비율이상을 기술직 몫으로 배정하는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대 공대 한민구 학장은 “기술직 공무원이 거의 없는 부처에 복수직위제 개선을 통해 기술직 공무원을 시급히 확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기획·인사·예산·총무 등 중앙부처내 이른바 ‘요직’으로 분류되는 핵심직위를 복수직위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과기부를 제외하고는 과학기술 관련부처의 대부분이 이들 요직에 대부분 행정직을 기용하고 있다. 서울산업대 하태권 교수는 “오랜 행정직 우대, 기술직 천시 전통으로 행정의 전문성 부족이란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복수직은 가급적 기술직 중심으로 전환하거나 일정 비율을 기술직에 할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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