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매매 전문점을 아시나요”
추석을 앞두고 10만원권 백화점 상품권 2장을 선물받은 P씨는 근처 상품권 매매 전문점을 찾아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권으로 교환했다. 부모님께 드릴 제화상품권 10만원권 2장과 추석 연휴 때 필요한 5만원 상당의 놀이공원 이용권 2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P씨가 추가로 부담한 금액은 약 5만원에 불과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P씨처럼 백화점 등 쇼핑상가 대신 일명 ‘상품권방’으로 불리는 상품권 매매 전문점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소비자들이 상품권 매매 전문점을 찾는 이유는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싸게 사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선물로 활용할 수 있는 데다 갖고 있는 상품권을 되팔아 원하는 상품권으로 교환해 자신만의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상품권의 용도도 크게 변하고 있다. 과거 실물상품 대신 주고받던 선물대체용에서 한발 나아가 보다 효율적인 쇼핑이 가능한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상품권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 상품을 골라 살 수 있다는 유용성과 주고받기 쉽다는 편리성이 더해져 매년 상품권 수요는 30∼50%씩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과거 옷과 구두를 사던 것에서 이제는 외식·레저시설 이용은 물론 영화 및 스포츠 관람에까지 사용될 정도로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종류도 종이상품권 일색에서 선불카드와 전자상품권, 적립식 기프트카드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수요 확대에 따른 다양한 상품권의 등장과 사용범위의 확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상품권의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상품권을 알뜰 쇼핑을 위한 소도구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주거나 받은 후 원하는 상품을 구입하면 그것으로 끝이 났던 상품권이 액면가 이하로,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매매되면서 새로운 틈새 시장을 형성하고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제공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상품권 매매 전문점을 선호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상품권에 적용되는 할인율 때문. 이미 ‘현금주고 사면 바보’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대부분의 상품권이 액면가 이하에 거래되고 있다.
예컨대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액면가보다 보통 6∼7%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10만원권이라면 9만3000원이면 된다는 얘기다. 물론 요즘은 추석특수를 맞아 수요가 많아지면서 실제 매매가는 이 보다 조금 높은 편이다. 25일 기준으로 현대백화점 10만원권 상품권의 구입 가격은 4.5% 할인된 9만5500원이다. 반대로 팔 때는 9만4000원을 받을 수 있다.
제화상품권은 액면가의 무려 30∼45%까지 할인된 가격에 거래된다. 만약 소비자가 10만원짜리 구두를 구입하려 한다면 먼저 제화상품권을 40% 할인가에 구입한 후 세일기간을 이용하면 4만원 정도로도 가능하다. 이밖에 도서·문화·외식·레저·관광상품권은 최고 7%, 놀이공원 이용권은 절반 가격에 구입 가능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품권을 할인 판매하는 곳은 백화점 주변의 구둣방이 전부였다. 그러나 상품권 시장이 확대되면서 티켓나라(http://www.ticket4488.co.kr), 가지가지(http://www.gajigaji.com), 티켓코리아(http://www.t-k.co.kr) 등 상품권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티켓나라의 경우 체인점 형태의 15개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며 변하는 상품권 시세를 실시간으로 제공, 소비자들이 각종 상품권을 비교해가며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국민·삼성 등 신용카드사의 10만원권 기프트 카드는 3.5% 할인된 9만6500원에, 금강제화 10만원권은 7만2000원, 다사랑 도서생활권 1만원권은 9400원, 롯데월드 연간회원권(9만원)은 4만5000원, 문화상품권 1만원권은 9400원에 각각 구입 가능하다. 고속도로 통행카드도 8%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이처럼 상품권 할인 매매가 성행하게 된 것은 상품권의 용도와 종류가 크게 늘어난데서 기인한다. 백화점 등 특정 매장에서 공산품 구입에 한정됐던 상품권 용도는 최근 몇년새 불특정 다수의 매장에서 컨텐츠 및 서비스 상품 이용까지 전방위로 확대됐다. 종류만도 200여종에 이른다.
70년대 금강제화 상품권이 상품권이란 이름으로 첫 선을 보인 이후 지난 99년 상품권 발행과 판매를 규제해온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각종 상품권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도서·문화·관광상품권에 이어 외식과 전자상품권이 나왔고 미팅·보험·농산물·스포츠 등 수많은 이색 상품권에 이어 최근에는 기프트카드와 김치상품권까지 등장, 상품권 전국시대를 열고 있다.
또 상품권간 치열한 경쟁으로 상품권의 사용 범위는 자연스럽게 확대되고 있다. 사용처가 많다는 것은 이제 동종 상품권간의 핵심 경쟁요소다.
백화점 상품권으로 기름을 넣고 주유상품권으로 백화점 상품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옛 일이다. 상품권으로 비행기도 타고 호텔에 묵으며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상품권은 단순 상품교환용 선물이 아닌 현금을 대신하고 경제적 이익까지 안겨주는 제2의 화폐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