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만 해도 어렸을 때 동네 만화가게란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밥 먹는 것도 잊고 만화속 이야기에 빠져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은 형태는 바뀌었지만 생활속에서 우리는 많은 만화들을 만나고 있다. 일간지·주간지·월간지 등 잡지에도 만화 코너가 반드시 자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자연히 많은 만화를 접하게 된다.
특히 스포츠의 경우 만화는 아주 중요한 콘텐츠 중 하나다. 스포츠지에는 평균 3∼4 가량 만화 코너가 있기 마련인데 언제나 고정팬이 있다.
권위있는 일간지에서조차 만화 코너가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만화에 나온 필체가 하나의 독립된 서체로 인정받기도 할 정도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만화의 생활화는 이미 많은 곳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많은 만화 콘텐츠들을 접할 수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한가지 평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마다 각기 좋아하는 만화 순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또 이렇게 취향이 드러나는 요소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내용 못지않게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선호도, 또는 공감대라는 것이다.
필자의 회사에서 얼마 전에 기획작업의 하나로 모 스포츠지에 인기리에 연재되는 만화를 애니매이션화하자는 기획이 있었다. 내용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느낌을 주는 남자가 겪는 생활상의 에피소드를 회마다 엮어내는 것이었는데 특히 주인공에 대한 편안함이 다가오는 그런 만화였다. 약간은 무기력해보이는 동그란 얼굴에 두꺼운 검은테 안경을 낀 주인공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30∼40대 구성원 중 한사람으로 공감대를 갖게 만드는 캐릭터다. 기획일이 진행되면서 이 만화 작가를 만나게 됐다.
작가와 필자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에 약간 늦은 필자는 서둘러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외부손님을 지나치게 되었다.
급하게 걷던 걸음의 관성으로 일단 지나쳤지만 몇초 되지 않아 필자는 돌아서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OOO’님 아니세요?”라고 물어 보았다. 역시나, 그렇다는 것이었다.
주마간산으로 지나쳤지만 그의 옆모습은 그 만화속 주인공과 같다는 생각에 익숙함을 느꼈고, 그가 오늘 만나기로 한 작가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식으로 다시 대하는 그는 모습은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바로 그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의 만화가 우리에게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주면서 편하게 다가온 것 역시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모습을 전해주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런 것 아니었을까.
<손동수·픽토 대표 artplus@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