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 ‘낙하산 인사’가 또다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과기계로부터 눈총을 사고 있다.
국내 최대 출연연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오길록)의 차기 감사 선임을 앞두고 정치권(여권)에서 밀고 있는 모 인사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ETRI 감사 선임은 9월 5일 상급기관인 총리실 산하 산업기술연구회(이사장 박원훈) 이사회에서 투표로 결정, 일종의 공모형태를 띠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누가 후보 추천을 받든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구조적으로 이사회 구성상 소위 정치권이 미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투표권을 가진 13명의 이사 중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 있는 당연직(과기·산자·정통·국조실·기획예산처 등 5개 부처 차관급) 다섯 표를 접고들어갈 경우 나머지 두 표만 확보하면 간단히 당선 정족수인 과반수를 넘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ETRI를 포함한 과기계에서는 이번에도 정치권 출신이 출연연 감사직을 차지하고 나아가 ‘출연연 감사=정치권’이란 등식이 고착화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 원로 과학자는 “과기중심사회 구축과 이공계 살리기가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구시대의 유물인 낙하산 인사가, 그것도 과학기술계의 한복판에서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당사자인 ETRI의 관계자도 “신성장동력 발굴 프로젝트 착수로 다른 데서도 ETRI를 포함해 출연연에 대한 기대가 큰데 변화의 중심에 선 이곳에 ‘낙하산’이 떨어져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