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팅 산업의 새 판 짜기가 시작됐다.
기술 집약적인 컴퓨팅 산업의 특성상 핵심 이슈와 트랜드가 빠르게 변화하는데다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세계 주요 컴퓨팅 업체들이 불황을 탈출하기 위한 히든 카드로 새로운 기술과 마케팅 이슈를 내 던지고 있다.
더욱이 3분기 이후에는 그동안 침체했던 IT 경기가 바닥을 찍고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 대두되면서 세계 컴퓨팅 산업을 주도해온 다국적 기업들이 그동안 준비해온 차세대 컴퓨팅 기술과 제품들을 쏟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기업용 시장의 신흥 세력
3분기 이후 컴퓨팅 시장의 핵심 이슈는 IA, 윈도, 리눅스 등 그동안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의 변방에 머물렀던 세력들이 중심을 향해 도약하는 시기가 될 것이란 점이다.
물론 IA(인텔 아키텍처)를 내세운 인텔, 윈도 플랫폼의 마이크로소프트, 공개 소프트웨어 진영의 대표 주자인 리눅스 진영 등이 전세계 컴퓨팅 산업 및 IT 분야에서 차지해온 비중은 매우 크다.
하지만 이들 3개 진영 모두 그 영향력이 데스크 톱 PC 및 소형 서버 분야에 국한돼 온 것이 사실이다. 말을 바꾸면 인텔은 데스크 톱이나 노트북 등 개인용 시스템 칩 시장에서는 최 강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스템 시장에는 발도 들여 놓지 못했던 것이 그동안의 상황였다. 윈도 운용체계 및 애플리케이션으로 전세계 IT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에도 운영체계 분야에서는 유닉스나 전용 OS에 밀려 서버용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기업용 솔루션의 경우 DBMS 분야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였다. 리눅스 역시 고작해야 기업의 단위 업무 서버 정도로 사용되는 정도였다.
◇64비트 IA(인텔 아키텍처)
3분기 이후 상황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64비트 기반의 서버 전용 칩인 `아이테니엄2`를 내놓으면서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AMD 역시 옵테론 이란 이름의 64비트 칩을 선보였다.
64비트 인텔과 AMD의 64 비트 칩의 등장은 범용칩 기반의 서버가 기업용 시장에 진입하는 전혀 새로운 상황을 연출해 내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의 주력 시스템인 유닉스 서버의 경우 개별 제조사들이 독자적인 RISC 칩을 개발 사용하고 있다. 아이테니엄2와 옵테론은 이들 RSIC 칩과 달리 서버 제조사와 독립적이며 누구나 이 칩으로 서버 시스템을 개발, 비즈니스를 벌일 수 있게 된다.
이같은 변화는 전용 시스템인 메인프레임이 주도했던 컴퓨팅 시장에 오픈 시스템인 유닉스 서버가 등장한 것과 비교될 정도로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여겨지고 있다.
◇ 윈도 플랫폼의 기업용 시장 진입
인텔이 아이테니엄2로 기업용 시장 진입을 시도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64비트 기반의 운영체계인 윈도 2003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32비트 기반의 데스크 톱 시장에서 일단 운용체계의 패권을 거머 쥔 뒤에 오피스, 웹 브라우저,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영역을 확대했듯이 기업용 서버 시스템에 적합한 윈도 2003을 기반으로 DBMS, ERP, CRM, e비즈니스, 웹 서비스 등 기업용 솔루션 시장으로 영역 확대를 본격적으로 꾀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데스크 톱 시장에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유지해온 강력한 유대관계(윈텔)가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영역에서도 재연될 것으로 보여 IA와 윈도의 기업용 시장 공략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리눅스 기업용으로 확산
리눅스 진영의 역시 그동안 기업용 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주요 리눅스 전문업체들이 기업용 시스템에 적합한 운용체계와 솔루션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데다가 윈도 진영의 기업용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방패 막이로 리눅스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HP, IBM, 선마이크로시스템즈 등 주요 서버 업체들이 인텔의 64비트 칩을 기반으로 한 서버 시스템의 운용체계로 윈도 대신에 리눅스를 채택하고 있어 리눅스의 기업용 시장 확산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더욱이 최근들어 중대형 시스템 대신에 소형 시스템을 묶어서 사용하는 클러스터 시스템이 인기를 모으면서 리눅스 대거 채용되고 있는 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차세대 컴퓨팅과 차세대 제품
서버 업계에서는 IBM의 ‘온디맨드’, HP의 ‘어댑티브 엔터프라이즈(AE : Adaptive Enterprise)’,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N1’ 등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컴퓨팅이 3분기 이후 핵심 마케팅 이슈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한국IBM,한국HP,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은 각사 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지만 차세대 컴퓨팅 전략이 녹아든 제품과 서비스를 차례로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패키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오는 10월 마이크로소프트, 한글과컴퓨터,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테크다임, 씽크프리 등이 펼칠 차세대 오피스 전쟁이 최대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스토리지의 가격 인하 경쟁, DBMS WAS ERP 등 다양한 기업용 솔루션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해온 국산 업체들의 약진 여부, TCO를 줄이기 위한 관리 솔루션 등도 핵심 이슈와 트랜드로 꼽힌다.
이밖에도 CMS를 비롯한 틈새 시장의 부상, 정보 보호 업계의 능동형 보안 솔루션 경쟁 등도 주목하고 지켜볼만한 새로운 이슈들이다.
◇새로운 사령탑의 데뷔 무대=3분기 이후 국내 컴퓨팅 시장은 올들어 새로 취임한 CEO들이 실제 시장에서 능력을 평가받게 된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다국적 IT 기업의 CEO로서는 드물게 한국형 경영을 통해 장수를 한 전임 CEO로부터 자리를 물려 받은 윤재철 한국후지쯔 사장과 김경진 한국EMC 사장은 이전 CEO때의 장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한국후지쯔와 한국EMC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올초 취임한 홍순만 사이베이스코리아 지사장과 오재철 볼랜드코리아 지사장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 놓고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모멘텀을 창출해 내야 한다. 강세호 한국유니시스 사장은 본사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 사업의 확대 전략을 한국유니시스의 문화에 효율적으로 접목시켜야 하는 문제를 풀고 있다. 경영권분쟁을 치르고 회사를 인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백종진 한글과컴퓨터 사장과 천신일 세중 나모인터랙티브 회장은 ‘경영 안정화’와 ‘기업 이미지 쇄신’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창희 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