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위원회가 4일 일본·미국산 리튬1차전지와 일본산 산업용 로봇에 대한 덤핑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대상이 중국을 생산기지로 한 저가 공세(리튬전지)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국의 하이테크 제품(로봇)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은 고사 속도를 늦추고 대체 산업을 육성하며, 차세대 유망산업의 경우는 성숙기간을 벌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리튬1차전지=지난해 기준 국내 연간 시장 규모가 76억원에 불과한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수입품이 88.2%를 차지, 사실상 국내 생산기업들이 거의 고사 직전에 직면해 있는 분야다.
실제 지난달 20일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1차 전지 기업 서통이 최종 부도를 맞아, 심화되고 있는 1차 전지업계의 경영난을 대변해줬다. 이미 중국 제품의 범람으로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은 상실한 상태며 그나마 업체들을 연명시키던 국내 시장조차 이제 중국 제품에 자리를 모두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국내 기업 비츠로셀의 덤핑 조사 신청도 이같은 벼랑끝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러나, 덤핑 판정이 나더라도 일시적인 조치일 뿐 장기적으로 국내 1차전지 산업을 보호하지는 못할 전망이다.결국 기업들은 대체 산업 육성이나 플랜트 수출 같은 새로운 매출 전략을 세울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실제 로케트전기의 경우 중국에 전지 생산 설비 수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6축수직다관절형산업용 로봇=현대중공업은 산업용 로봇 부문 덤핑 조사 신청은 로봇산업이 10대 신성장 산업 중 하나로 선정된 차세대 우리나라의 ‘먹거리 산업’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현대중공업이 신청한 제품의 국내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간 470억원 수준이며, 이중 국산품이 21.3%, 수입품은 78.7%다. 특히 수입품 중 92%가 일본산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기술, 가격경쟁력 등을 포함한 산업용 로봇산업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5년가량 뒤쳐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진국 기술 수준이 제자리 걸음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제 및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최소 5년의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향후 전망=무역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면 3개월 내에 예비판정을 통해 잠정 덤핑방지관세 부과 여부가 결정하고 다시 3개월 내 최종 판정을 내리게 된다.1차 전지의 경우 지난 96년부터 99년까지 3년간 5.25∼49.69%의 덤핑 관세가 부과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덤핑 관세가 일시적인 국내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인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다.
덤핑 관세가 시간을 벌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블록별로 관세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국제상황을 고려할 때 이같은 도구적 효용성도 줄어들고 있다.
결국, 미국과 일본의 고가 첨단 제품과 중국의 저가 제품 사이에서 ‘샌드위치’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해결하려면 국가와 기업이 산업별로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춰 나가는 쪽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