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 분식회계 등으로 불거진 기업 투명성(transparency) 문제는 IMF 금융위기를 거치고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다. 참여정부도 IT와 정보화를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실현을 주장하고 있고, 기업의 입장에서도 21세기 조직의 핵심 경쟁력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본시장의 발달과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라 시장으로부터 신뢰감을 얻지 못하는 기업은 점점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보화와 함께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하기 시작한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한 방법으로서 ‘정보화를 통한 투명경영(e-transparency)’을 제안해 왔으며 최근 이 부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정보기술(IT)은 기업의 생산성 제고, 비용절감, 신사업 기회창출 등 전통적인 관점에만 초점이 맞춰져왔다. 필자는 지난 97년부터 기업정보화지원센터를 통해 국내 업종별·규모별 1300여개 전통기업을 대상으로 수행해 온 ‘기업정보화수준평가’를 진행하면서 IT가 이러한 ‘전통적’인 차원 외에 ‘정보화 투명성’을 제고하는 매우 실증적인 방법임을 확신하고 있다.
기업 투명성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일례로 최고경영자(CEO)의 윤리의식에 호소하는 이른바 ‘양심경영·윤리경영’과 기업지배구조 및 재무회계적 접근을 중심으로 ‘재무·회계정보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양심 및 윤리경영의 관점에서 기업은 주주, 고객, 협력업체, 임직원, 지역사회 및 환경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과의 관계에서 준수해야 할 건강한 가치를 지키며 경영해야 한다. 이는 경영진의 태도와 철학, 비전 등 CEO의 의지에 기업 투명성이 많이 좌우된다는 가치에 기인한다.
기업은 투명한 회계는 물론이고 건전한 작업환경· 성실납세· 환경경영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고 이는 CEO의 양심과 윤리에 의존적이다. 따라서 이를 제고하기 위한 각종 인식제고 활동, 행동강령, 법제도적 장치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기업 투명성 제고의 목적(CEO의 양심·윤리제고)과 수단(기업 윤리강령 제정 등)이 다분히 정량적이라기보다는 정성적이다.
이와 함께 기업 지배구조, 재무회계를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자(주주, 정부, 금융기관, 신용평가기관 등)간에 공시되는 ‘재무회계정보의 투명성’을 제고하자는 연구도 한창이다. 이는 재무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 기업의 경영 성적표 및 주요 가치판단 정보가 의도적으로 제대로 공시되지 않는 것에 기인한다.
기업은 주주에게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대리 문제로 인해, 정부에게는 세금회피 및 기타 경영 전략적 차원에서, 금융기관과는 대출확대 등 금융활동을 목적으로, 신용평가 기관에는 자사의 가치상승을 목적으로 경영 성적표와 주요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적시에, 정확하게 공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분야의 연구는 기업 지배구조 및 재무회계 상에서 벌어지는 기업공시와 회계처리, 분식회계 등을 통제하는 여러 가지 법제도적· 회계적 방법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사반스옥슬리법(the Sarbanes-Oxley Act)’ 등을 통해 자사의 CFO뿐 아니라 CEO도 기업의 경영 성적표에 함께 서명을 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의 일부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정보화 투명성(e-transparency)’ 개념을 제창하고 있다. 이 개념은 정보 시스템에 기반을 둔 기업투명성 측정 모델을 의미한다.
정보화 투명성 모델은 주주, 경영자, 정부, 종업원, 협력업체, 고객 등 기업 투명성에 관련된 6대 이해관계자 네트워크(e-transparency stakeholder networks)를 △주주(지배구조 투명성) △경영자(의사결정 투명성) △종업원(정보공유 투명성) △고객(서비스 투명성) △협력업체(조달거래 투명성) △정부(조세 투명성) 등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들 6대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 흐르는 정보, 물자, 자금, 의사결정의 4대 흐름을 업무 및 정보시스템 중심으로 관찰·분석하고 있다.
정보화 투명성 모델은 측정 단계에 따라 아래와 같은 성장 단계를 갖는다. 먼저 정보화 투명경영을 위한 기반 구축을 들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투명경영을 위한 정보시스템 구축 및 통합수준을 위주로 측정하는 ①정보화 투명성 준비(e-transparency readiness) 단계, 업무 및 거래관행을 중심으로 단위 업무(business process) 당 물자/자금 흐름의 일관성(consistency)를 측정하고, 정보화 투명성 준비 시스템의 활용성을 측정하는 ②정보화 투명성 실행(e-transparency practice) 단계, 그리고 정보화 투명성 효과 및 경쟁력 수준을 측정하는 ③ 정보화 투명성 경쟁력(e-transparency competitiveness) 단계가 그것이다.
즉, 정보화 투명성 모델은 각 성장단계(준비, 실행, 경쟁력)에 따른 수준측정 및 제고방안에 대한 것이다.
정보화 투명성 모델의 특성을 살펴보자.
우선 CEO의 양심에 정성적으로 호소하는 기존 방식보다는 기업의 거래관행과 업무행태를 일목 요연하게 추적할 수 있는, 더욱 실증적인(visible) 방법이란 점을 꼽을 수 있다. 정보시스템 특히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의 경우에는 시스템 자체의 설계상 결과물(material)의 흐름과 돈(capital)의 흐름이 일치하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하다. 또한 현장에서 입력되는 전표처리를 최우선적인 흐름으로 처리하게 되어 있으며 업무 처리상 여러 단계에 걸친 검증을 통해 거래관행과 업무행태가 가시화됨으로써 투명성을 제고할 여지가 높아진다.
일례로 분식회계의 경우, ERP를 활용해 정보시스템 차원에서 투명한 데이터를 산출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가지고 회계적 기법에 따라 충분히 조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ERP는 이미 전기된 거래내역에 대해서 취소하지 않는 한 원천 데이터 수정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고 로그 데이터와 수정근거를 반드시 시스템에 남기게 되어있다. 시스템이 현장 위주의 전표처리 방식으로 모든 해당 사업단위에서 전표를 입력하고 이를 취합해 자동적으로 재무제표를 산출하기 때문에 중간에 데이터를 수정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으며, 또 불가피하게 데이터를 수정할 경우에도 그 내용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정보화 투명성은 기업지배구조 및 재무회계상 투명성 뿐 아니라 고객, 협력업체, 종업원 등 기업의 경영활동에 관계된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례로, 고객과의 투명성(가격, 품질, 정보 등), 협력 업체와의 투명성(입찰, 거래 등), 종업원과의 투명성(인사/성과관리, 내부정보공유 등) 등은 기업 투명성이 결국 기업의 이해관계자간의 ‘신뢰’를 담보한다고 할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외 이사제를 도입하고 내부감사의 역량을 강화하는 등 경영성적표의 투명성 보장을 위한 재무회계적 장치만으로는 보장되기 미흡한 부분이다. 기업의 판매, 인사, 영업, 생산, 조달 등 투명성의 빈틈이 보이는 길목 길목의 업무에 걸쳐 투명경영이 표준화되어 구현되도록 하는 데는 정보시스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셋째, 정보화 투명성은 기업의 물자와 자금의 움직임이 실시간(real-time)으로 기록되고 추이가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등 더 시계열적이다. 이는 요즈음 많은 외국기업이 회계감사에서 정보 시스템 감사를 필수화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회계감사시 ERP 시스템으로부터 나온 최종 재무회계 결과치는 옳다고 전제하고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의 무결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종 결과치가 나오기까지 정보시스템 내에서 처리된 과정에 대해 감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정보시스템만으로 기업 투명성을 완전히 담보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더드를 반영하는 표준화된 정보시스템을 적용하고 활용하는 기업이라면 투명 경영을 위한 필요조건은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기업정보화를 통한 기업투명성을 통해 첫째, 국가는 투명한 비즈니스 환경을 보장하여 국제적으로도 국가 신인도를 제고할 수 있으며 세수확대가 가능하다. 둘째로 기업은 투명한 기업경영을 통해 시장으로부터의 신뢰를 얻고, 노사관계에서도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셋째, 고객은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을 공론화하고 적극적인 사례발굴과 정책적인 유인 등을 통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투명경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따라서 기업정보화지원센터는 지금까지 논의한 정보화 투명성 모델을 활용해 지난해의 투명경영 필요조건 측정에 이어 올해는 투명경영 실행측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6대 이해관계자 모델을 더욱 구체화시켜 기업 내부의 경영자에게 보고되는 내부 이해 관계자 모델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 임춘성 기업정보화지원센터장/연세대학교 컴퓨터산업공학부 교수 leem@yonsei.ac.kr
* 임춘성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석사
◇미국 버클리 대 박사
◇미국 루저스(Rutgers) 대 교수
◇연세대학교 컴퓨터산업공학부 교수(현)
◇기업정보화지원센터 센터장(현)
◇제3기 대한민국 정보화추진위원회 자문위원(현)
◇전국경제인연합회 정보통신 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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