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주부 김모씨는 서둘러 출근길에 오르느라 가스밸브를 제대로 잠궜는지, 집 대문 잠금장치는 걸어뒀는지 조바심이 난다. 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들고 ‘가스밸브 잠금’과 ‘시근장치 가동’ 명령을 내렸다.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김씨는 퇴근시간과 초등학생 자녀의 귀가에 맞춰 식사가 될 수 있도록 밥솥을 향해 다시한번 ‘예약취사’ 명령을 전달하고서야 안심하고 오늘 하루 회사일을 시작한다.
사례 둘. 2010년 세계 각국은 정보통신 무한경쟁 시대의 패권 쟁탈전에 한창이다. 불과 5년전만해도 세계 IT시장에서 미국은 의심할바 없는 ‘팍스 아메리카’를 구가했지만, 지금은 한국의 공격적인 추격에 그 지위마저 위협받고 있다. 지난 7년전 ‘브로드밴드 코리아’를 선언한 한국이 디지털홈이라는 새로운 시장테마를 들고 나와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이 전통적인 강세를 보였던 정보가전 기술과 지난 90년대 중반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유무선통신 기술을 발판으로, 지구촌 가정의 정보통신 플랫폼을 장악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홈’ 산업이 풍요로운 정보통신 가정생활을 구현하고, 국가경제에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할 유망 분야로 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앞으로 1,2년내 실현될 수 있는 맹아적 형태의 디지털홈 서비스로 목전에 다가서고 있다. 이어 거론한 국가산업적 효과 또한 가능성이 전무한 사례는 결코 아니다. 지난 수년간 축적해 온 국내 IT 산업역량은 신생 디지털홈 시장에서는 승산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정보가전·통신 등 주요 IT 분야에선 지금도 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는데다, 디지털홈 시장의 깃발 또한 우리나라가 먼저 기선을 잡아가고 있는 덕분이다.
디지털홈이란 집 안팎에서 다양한 정보단말을 통해 지능형 정보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이른바 꿈의 가정. TV로 고품질의 방송과 인터넷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며, 쇼핑몰에 직접 가지 않고도 다양한 상품을 가정에서 TV를 통해 리모콘으로 구매할 수 있다. 가전기기의 고장상태나 가스사용량 등을 외부에서 자동 관리하고, 에어콘·전등 등 필수 가전설비 또한 집밖에서 휴대형 단말기로 제어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뻗어나갈 분야가 무궁무진한 탓에 아직은 서비스 개념조차 모호하지만 올 들어 정보통신부와 통신·전자·건설 등 주요 업계가 시장창출에 팔을 걷어부치면서 디지털홈은 서서히 제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우선 정부는 오는 2007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61%에 달하는 1000만가구를 디지털홈 환경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원대한 구상. 올해부터 이 기간까지 정부와 민간 투자를 포함해 사업예산만도 총 2조여원에 육박한다.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디지털홈이 유발할 생산 및 고용효과는 이 기간동안 각각 22조여원과 16조원. 가히 우리나라를 먹여살릴만한 신수종산업으로 여겨질만하다.
정부와 업계는 이를 위해 이미 지난 7월 1년간의 사업일정으로 시범사업의 닻을 올렸다. 특히 주목할만한 대목은 이번 시범사업에서 디지털홈 서비스를 위한 기반환경으로 리눅스 운용체계(OS)를 채택키로 했다는 점이다. 국가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지목된만큼 로열티 의존도가 적은 리눅스로 국내 산업역량을 키우겠다는 야심인 셈이다. 이를 위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최근 임베디드 리눅스 기반의 디지털홈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홈서버나 개인의 휴대단말기에 탑재해 원격 멀티미디어·컴퓨팅·재난관리·홈커머스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지원할 기반기술인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와 업계는 조기 시장활성화를 위해 보급형 정보가전기기와 서비스를 묶어 경제적인 이용환경을 조성하고 각종 장비·서비스에 대한 인증제도를 마련키로 했다. 이밖에 디지털홈 분야의 차세대 신기술 개발도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정부와 업계는 UWB·FTTH 등 광대역 통신기술과 스마트TV·지능형로봇 등 첨단 정보기기, 3차원(3D) 애니메이션 등 신기술이 총집결하는 종착점은 디지털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발빠른 행보에 깜짝놀라 해외에서도 인텔·소니·삼성전자 등이 참여하는 디지털홈워킹그룹이 결성되는 등 세계적인 관심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동안 동북아 변방지대의 일국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에 최근 인텔·IBM·HP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연구개발(R&D) 센터를 설치하려는 것도 미래 디지털홈 시장에 크게 고무된 때문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소박스>과제는 무엇인가
디지털홈 산업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다소 막연한 기대감 수준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당장 원하는 핵심 서비스가 무엇인지가 모호한 탓이다. 쉽게 말하면 디지털홈 서비스 수요를 창출할만한 이른바 ‘킬러애플리케이션’이 없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 있다.
삼성전자 전명표 부사장은 “면밀한 시장조사를 통해 업계와 사용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사업모델을 만드는 게 커다란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시장수요와 더불어 개별 가전제품과 통신기술간의 기술표준화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현재로선 정보가전형으로 개발된 첨단 TV조차 가전업체별로 제각각의 기술표준을 채택하고 있는 현실이다. 디지털홈이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간의 제한없는 접속을 전제로 할때 표준화는 가장 역점을 둬야 할 현안 가운데 하나다.
이와 함께 각종 통신·방송 콘텐츠의 시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여기다 디지털홈 환경의 기반인 광대역 정보통신망도 갖춰져야 한다. 정보기기 하나마다 고유의 인터넷 주소를 부여할 수 있는 차세대 인터넷주소(IPv6)나 정부의 댁내광가입자망(FTTH) 구축 플랜도 결국 미래 초고속 통신환경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진대제 정통부장관은 “정부도 세제혜택이나 자금 지원 등 가능한 수준에서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며 업계의 자발적인 시장노력과 더불어 아낌없는 육성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인터뷰]한국홈네트워크산업협회 초대 회장, KT 이용경 사장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를 이어주는 유무선 광대역 통신망’
90년대 정보통신시대를 개막시킨 주역이 인터넷·무선 통신이듯, 미래 디지털홈 환경의 근간도 역시 첨단 통신기술이 주춧돌을 놓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꿈꾸는 디지털홈에서는 유무선의 구분과 기기의 제한없이 자유롭게 광대역 통신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업계가 디지털홈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선언하면서 가장 먼저 ‘네트워킹’ 분야에 눈돌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최근 새롭게 출범한 한국홈네트워크산업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이용경 KT사장에게 1000만 디지털홈 구현을 위한 혜안을 들어봤다.
-협회의 출범배경은 무엇인가.
▲정부는 IT 신성장동력 육성을 통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조기에 이룩하자는 취지로 광대역통합네트워크(BcN)과 디지털홈을 핵심분야로 꼽았다. 한국홈네트워크산업협회는 이들 양대 신성장동력을 구현하기 위한 기반을 조속히 다지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또한 급변하는 정보통신 환경에 관련 업계가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공동의 힘을 결집하자는 뜻도 있다. 세계적으로는 멀지 않은 미래 엄청난 시장수요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국내 업계의 시장선점을 유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어떤 활동을 벌이나.
▲한마디로 말하면 IT시장에 홈네트워킹이라는 신수종산업을 육성, 발굴하는 것이고 나아가 세계시장에서도 주도권을 갖도록 여건을 마련하자는 방향이다. 이를 위해 우선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대로’ 통신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환경을 겨냥해 BcN을 조기에 구축,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처음 시도되는 작업으로 국내 IT 산업의 업그레이드를 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BcN을 토대로 디지털홈 네트워크를 구현할 다양한 연계사업을 구상중이다. 이를 통해 통신·정보가전·콘텐츠 등을 묶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생각이다. 또한 관련 업체들간 공유의 장을 만들어 공동 대처하는 한편 정부와 더불어 해외진출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KT 사장으로서 이미 오래전부터 홈네트워킹에 관심을 쏟은 것으로 안다. KT의 전략은 무엇인가.
▲KT는 네트워크와 관련 단말기, 플랫폼, 콘텐츠 서비스 등 4가지 분야에 걸쳐 기술개발을 서둘러왔다. 이미 지난해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와 시범사업용 홈게이트웨이를 개발하고 시범아파트 단지를 구축한데 이어 올해에는 본격적인 시장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당장은 음향·영상(A/V) 서비스가 주종이지만 내년부터는 원격진료·양방향TV·맞춤형정보 등 다양한 부가가치 사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통신·방송 융합시장이라는 새로운 수요 창출이 목적이다.<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