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전성시대를 이을 차세대 주자는 무엇인가?’
D램이 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의 쌀이었다면 21세기 그 바통을 이어갈 차세대 메모리는 무엇이 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세대 메모리는 비단 우리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해 기술력을 과시한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한국의 또다른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산학연의 연구개발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기존 플래시메모리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1000배 이상 빠른 차세대 메모리 P램(Phase-change RAM)을 개발했다. P램은 물질의 상(相) 변화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로 비휘발성 상 화합물질인 ‘게르마늄 안티몬 텔룰라이드(Ge₂Sb₂Te5)’가 비정질 상태에서 결정질 상태로 변화될 때 1비트의 데이터를 얻는 방식으로 동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메모리는 셀 내부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축전기(capacitor)를 통해 이뤄지지만 P램 은 전류를 가할 때 셀의 저항이 높은 비정질에서 낮은 결정질로 변화하면서 데이터를 저장하기 때문에 집적도를 높일 수 있다. 삼성은 이를 오는 2005년부터 노어(NOR)형 플래시메모리를 대체해 상용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D램과 비휘발성 플래시메모리 등 기존 메모리의 성능한계를 극복하고 기능을 통합하는 차세대 메모리에 대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비단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하이닉스반도체, 인텔, AMD 등 모든 반도체업체들은 IT기기의 융복합화와 모든 기능을 한칩에 통합하는 시스템온칩(SoC)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차세대 메모리 주도권을 쥐기 위한 사활을 건 한판 승부에 돌입했다.
일본을 제치고 D램 시장을 석권한 한국기업들은 20여년 쌓은 D램 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메모리시장도 석권하겠다는 목표 아래 학계 및 연구계와 함께 새로운 상용기술 개발에 열을 쏟고 있다.
◇각광받는 차세대 메모리 후보군=실리콘을 대체할 새로운 메모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기기가 급증하면서 차세대에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가 주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로 예상되는 새 유망기술로는 상변화 메모리, P램, C램(Chalcogenide), M램(Magnetic), Fe램(Ferroelectric) 등이 있다.
상변화 메모리는 기록, 소거, 재생속도, 재기록 회수 등에서 D램급의 성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상변화에 따른 전기저항의 변화가 커 초고밀도화에 유리하면서도 경쟁 메모리인 M램과 Fe램에 비해 소자구조 및 제작공정이 단순하다. 또 정보저장과 처리 용량대비 저가격으로 제작이 가능해 독립형(stand-alone) 메모리 외에 시스템온칩(SoC)용 임베디드 메모리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활발하게 개발중인 Fe램은 D램과 같은 집적도와 S램과 같은 고속 동작, 플래시메모리와 같이 비휘발성의 특성을 가지는 통합 메모리다. D램과 같이 하나의 트랜지스터와 하나의 커패시터가 단위 셀을 이루는 구조여서 개발도 용이하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 3월 차세대 이동통신용 및 SoC용 메모리로 Fe램을 상용화하는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이 기술로 하이닉스는 64메가급 Fe램 개발과 양산체제를 구축중이다.
또다른 비휘발성 메모리 소자는 M램. M램은 기존의 D램을 능가하는 성능과 더불어 비휘발성 특성으로 차세대 메모리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기존 비휘발성 메모리에 비해 빠른 속도(수년 내에 10㎱ 정도 가능)와 초소형화의 가능성이다. 또 컴퓨터에 내장되면 부팅과정 없이 전원을 켜는 즉시 사용가능하다. IBM은 내년부터 256M M램을 채용할 예정이며 모토로라는 지난해 6월 1M급의 M램을 발표한 후 내년에 180㎚, 오는 2006년에 90㎚급 프로세스의 M램을 각각 상용화 할 예정이다.
◇전략적 기술 공유 활발=D램 시장의 최대 경쟁자중 하나인 인피니온과 마이크론은 차세대 모바일 메모리 개발을 위해 최근 손을 잡았다. 셀룰러램 RD램 같은 모바일 메모리를 함께 개발키로 한 것. 양사는 부족한 기술을 공동 개발한 뒤 각자 제품으로 상용화해 모바일 시장에서 다시 경쟁할 계획이다.
인텔은 최근 일본 엘피다에 1억달러를 투자하고 D램 설계 및 개발과정에서 상호 로드맵을 공유키로 기술협약을 체결하는 등 주도권 확보를 위한 발빠른 행보를 시작했다. 이번 계약으로 인텔은 엘피다의 연구개발 및 300㎜ 라인의 생산능력을 토대로 D램 산업의 표준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이닉스는 ST마이크로와 제휴를 맺고 이동통신기기와 디지털카메라 등 대용량 데이터 저장과 저전력 소모가 필요한 휴대형 정보기기에 적용이 가능한 NAND형 플래시 메모리를 공동개발중이다. 양사는 또 M램, F램 등 차세대 메모리 공동 개발도 검토중이다.
IBM과 인피니온은 최근 128킬로비트 용량의 M램 시제품 개발에 성공해 도쿄에서 열린 VLSI 심포지엄에서 공개했다. 지난 2000년부터 공동으로 M램 개발을 진행해온 두 회사는 프랑스에 위치한 합작벤처 알티스 세미컨덕터를 통해 M램 상용화를 진행할 계획이다. 모토로라는 ST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필립스 등과 M램 기술을 공유하며 M램 주도권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승자는 누가 될까=차세대 메모리 시장의 승자는 통신과 컴퓨팅이 융합되는 새로운 휴대기기 시장에서 가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시간 정보 유통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저전력 소모, 대용량 집적도, 그리고 빠른 속도가 차세대 메모리의 주요 요건이다. 또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특성이 하나로 통합된 SoC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 이조원 단장은 “원자나 분자를 하나의 비트로 이용할 수 있는 나노기술을 반도체에 적용하면 초고집적, 초고속의 1조 비트급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며 “기존 반도체기술은 집적도를 높이는 데 기술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누가 먼저 나노기술을 통해 이것을 해결하느냐에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지연 기자 jyjung@etnews.co.kr>
[인터뷰]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메모리 전도사로 불리는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51).
그는 늘 “모바일 제품과 디지털 저장장치 등에 사용되는 메모리 수요가 폭발해 메모리시장은 새로운 성장세를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그가 늘상 얘기하는 ‘퓨전 메모리’와 ‘메모리 신성장론’이다.
황사장은 최근 서울대에서 열린 ‘메모리반도체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의 강의에서도 “향후 디지털 산업의 핵심은 다양한 콘텐츠를 얼마나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면서 “디지털기기도 융복합화가 신속히 진행됨에 따라 다양하고 특화된 메모리가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모리 기술 앞으로도 부단히 발전하게 될 것이며, 젊고 유능한 우리 인재들의 도전 정신과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독려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새 성장동력이 될 차세대 메모리의 모습과 이를 개발할 원동력이 누가 될 지를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평가다.
그의 예견대로 이미 메모리는 3세대 휴대폰, 게임기, 디지털카메라, USB 플래시 드라이버 등 신개념 디바이스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메모리를 필요하는 새로운 수요처, 특히 모바일 기기 시장이 발굴되면서 새로운 기회가 도래한 것.
황사장의 이같은 견해는 최근 시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보고 개발했던 고집적 낸드형 플래시메모리가 시장에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 인텔과 AMD, 후지쯔 등이 석권한 노어형 플래시메모리시장에 눌려 만년 하위권에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난해 전년 대비 190%라는 경이적인 성장세로 플래시메모리 업계 순위를 8위에서 2위로 올랐다. 올해도 이같은 호조세는 이어져 100%에 육박하는 매출성장세를 기대하고 있다.
황사장은 여기에다 저전력 D램, 낸드 메모리, S램 등을 하나로 엮은 멀티칩패키지(MCP)로 세계 최대의 휴대폰제조업체인 노키아를 경쟁사인 인텔을 제치고 고객으로 삼았다. 모바일 메모리시장을 내다보고 끈질기게 준비한 덕분.
황사장은 차세대 메모리시장의 승자에 대해 “전력소모량을 줄이고 초소형화하고 집적도를 높인 다양한 메모리를 저렴한 가격에 종합적으로 공급하는 업체가 될 것”이라고 귀뜸한다. 즉, 모바일 메모리시장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는 견해다. 이를 위해 P램, M램, Fe램 등 다양한 비휘발성 메모리를 개발하고 DDR2 등 차세대 PC용 D램도 앞서 양산할 계획이다.
“D램에 이어 차세대 메모리시장에서도 삼성의 지배력은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황사장. 그의 시장을 내다보는 식견과 삼성의 탄탄한 기술력이 차세대 메모리시장에서도 한국이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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