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중 기록적인 강풍과 폭우를 뿌리며 영남지방을 관통한 태풍 매미가 남부 지방 곳곳을 할퀴어 놓았다. 철도·도로·전기·통신 등 국가 주요 간선망이 끊겨 교통 통신이 마비 또는 지체되고 열차탈선, 산사태까지 몰고와 인명피해 또한 크다고 한다. 남부지방 140여만 가구의 전기공급이 끊긴 것은 물론 유무선 통신장애 사고도 속출해 연락이 두절된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특히 울산·온산공업단지와 여수, 대구 성서공단 등에는 정전으로 공장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대규모 산업피해가 발생했다니 걱정이다. 국가의 대동맥 역할을 하는 통신이나 기간시설인 전기의 마비는 우리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신속한 복구와 구호작업이고, 어느 때보다 간절한 것은 온 국민의 따뜻한 나눔의 손길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 곧바로 정부를 비롯 한전, 통신·가전업계가 일제히 대책반을 구성, 복구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우리는 피해지역에 대한 복구 작업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져 시름에 잠긴 수재민들이 하루빨리 활력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한다.
태풍 매미는 순식간에 재난을 몰고 왔으나 이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으로 보인다. 자연재해 자체야 막을 도리가 없지만 재해가 나기 전이나 난 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고없이 닥치는 자연재해라지만 미리 대책을 세워놓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일단 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신속하게 수습과 복구에 나설 수 있도록 방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가 닥쳐도 놀라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인 재난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9·11 테러 이후 우리나라는 재난복구와 보안에 많은 신경을 써왔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태풍 매미가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허점 많은 전기·통신 등 국가기간망을 흔들어놓고 갔다. 기상관측 사상 초유의 강풍이라는 핑계는 우리 사회의 기간 인프라인 통신의 두절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할 것이며 위안을 해서도 안될 일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돼야 하는 것이 바로 통신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말 출범한 통신재난관리위원회와 통신재난대책본부의 발족 계기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이들 두 기구가 출범한지 2달도 채 지나지 않아 태풍에 유선망이 끊어지고 2900여개 무선 기지국이 무너지거나 정전으로 먹통되는 사태를 빚었다는 것은 많은 점을 깨닫게 한다. 특히 통신사업자들이 재해에 대비해 철저한 점검을 했는데도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우리의 통신운용체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제는 위성통신을 통한 최후의 백업라인 구축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전자민원, 전자조달 등 평상 활동에만 집중됐던 전자정부 구현 사업도 이제 자연재해 등 위기 발생시 빠르게 대처하고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을 대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상시적인 국가비상망 체제를 완비할 때 재해에 대처하는 능력이나 복구도 빨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풍이나 물난리만 나면 법석을 피우며 땜질을 하고 잊어버리는 일과성 재해대책은 전면 보수해야 한다. 사라, 루사, 매미보다 더한 태풍에도 끄떡없는 국가 기간시설을 유지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