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회사인 CJ GLS의 한 임원은 최근 만난 정부 관료의 일천한 물류에 대한 인식에 혀를 내둘렀다. 지난 7월 일본 사가와규빈과 손잡은 CJ GLS는 물동량 처리를 위해 제반 서류를 갖추고 관세청에 이의 허가를 요청했다. 부산 세관은 수출입 기업은 부산항에 물류 창고가 있어야 한다며 허가를 잇따라 보류했다. CJ는 부랴부랴 창고를 섭외했으나 부산항 내 창고가 턱없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인근에 창고를 마련하고 세관에 다시 신고했다. 하지만 세관은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세관 측 입장은 반드시 창고는 부산항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해양수산부 등 다른 부처의 도움을 받아 두 달만에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일본 파트너 사가와규빈 측은 일본에서는 일주일이면 끝날 일이 한국에서는 두 달 이상이 걸렸다며 복잡한 행정 업무에 당혹해했다.’
정부의 안일한 물류 마인드와 불합리한 제도가 유통과 물류업체를 옥죄고 있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비전 발표, 잇따른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앞두고 물류 산업을 활성화하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산업계에서는 냉랭한 반응이다. 물류업계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듣기 보다는 대답 없는 거창한 슬로건과 정책만 남발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제도 개선 ‘한 목소리’=유통·물류업체는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비스업이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설립 허가부터 창고 건립, 기본 물류업무, 산업인력 조달, 심지어 전기 사용료에 있어서도 불합리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먼저 ‘물류설비 인증제’ 사안이다. 산자부는 ‘유통산업발전법’을 통해 파렛트·컨테이너 등 인증 설비와 관련해 생산업체 유통합리화 자금 등을 지원해 줄 계획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한정돼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인증된 물류 설비 사용업체에 대한 혜택이 전무하다.
물류와 유통업체의 기간 인프라격인 ‘창고 건립’도 까다로운 법령으로 사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 중인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창고 신축이 가능하던 녹지와 준농림지역이 창고 건립 불가능 지역으로 묶였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업체가 물류 창고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과도한 투자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CJ홈쇼핑은 지난해부터 수도권에 대형 물류센터 건립을 위한 부지 매입을 추진해 왔으나 적정부지를 못찾아 계획 실행이 1년이나 지연되었다.
이 밖에 현행 ‘병역법’에서는 산업기능요원 채용업체에 물류업체가 제외돼 업계의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 물류 대행업의 부가세 신고 관리체계가 사업자 아닌 사업장 별로 돼 있어 이중과세는 물론 인력과 시간 과다 투입에 따른 생산성 저하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일천하고 안일한 정부 ‘물류 마인드’=물류 관련 불합리한 제도와 법이 산업계의 오랜 숙원임에도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는 것은 한 마디로 물류 정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딱히 전담 정부 부처가 없을 뿐 더러 소관 업무도 산발적으로 나눠져 있다. 물류 기반 시설과 인프라 관련해서는 건교부와 해양수산부가, 수출입 물동량 업무는 산업자원부가, 물류 정보화와 시스템은 정보통신부와 건설교통부가, 물류 행정은 행정자치부에서 부분적으로 맡고 있다.
부처 사이에 조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 산업계의 혼란과 가중시키고 있다. 화물연대파업 때는 모든 정부 부처가 광양으로 몰려드는 해프닝을 벌이지기도 했다. 책임지는 부서가 없다보니 물류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저마다 거창한 정책과 슬로건만 남발하고 세부적인 현안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반응이다.
박대용 CJ GLS 사장은 “산업계는 물론 관련 단체와 협회 등을 통해 물류 유통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불합리한 제도와 개선을 수차례 요구하고 있지만 감감무소식”이라며 “물류 정책 전문가도 없을 뿐 더러 해당 부처의 물류 마인드 개선없이는 물류 시장 활성화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현장 목소리 듣고 실질 지원정책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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