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초 어느날 오후 1시 대덕밸리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대덕연구단지 방향으로 10여분간 달리다 보면 대덕대학이 눈 앞에 들어온다.
개강 직후여서지 정문 입구에서부터 학생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정문 앞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여름이 가는 것이 마냥 싫은 듯 매미 울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며칠간 쉴 새 없이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친 사이 짙푸름을 자랑하는 녹색 신록들이 교정을 싱그럽게 수놓는다.
차창 사이로 100m 전방에 ‘대전시첨단산업진흥재단’이라고 큼직하게 적혀진 빨간색 벽돌의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건물로 향하는 오르막길엔 양 옆으로 늘어선 자동차 행렬이 빼곡하다.
‘산학협동 우수 대학 선정’, ‘산학연 공동기술개발 컨소시엄 대학 선정’ 등 파란색의 대형 플래카드가 걸린 대학 교정 옆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는 대전시첨단산업진흥재단.옆 교정에 학생들이 왔다갔다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재단 건물 앞에는 2명의 남자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대학 건물을 리모델링한 센터 안에 들어서면 우측에 1층부터 5층까지 24개의 업체명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안내판이 비로소 ‘국내 최고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요람’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표지판을 따라 5층에 위치한 화상 솔루션 전문기업 인터미디어를 찾았지만 ‘사장님은 3층에 계신다’는 연구소 직원의 말을 따라 다시 3층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8평 남짓한 사무실 공간에서 조자연 사장은 반가운 얼굴로 기자를 맞는다.
“다음주 월요일에 일본 JMS와 화상통신 기술 판매 계약건에 최종 사인할 예정입니다. 지금 마지막 준비 때문에 다소 정신이 없습니다.”
그동안 일본 시장에서 화상 솔루션 개발 기업으로 인정을 받아온 조 사장으로서는 이번 계약건 체결로 회사의 기술력을 진정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계약과 관련된 부대 사항도 인터미디어측에 전적으로 우선,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이끌어내게 됐다고 연신 싱글벙글이다. 그는 인터미디어가 이 계약건으로 올해에만 14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순이익만도 7억∼8억원은 무난할 것이라는게 그의 예상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대덕밸리 대다수의 기업들이 자금난과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조 사장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사장님이 직원들 모두에게 콘도 회원권을 주셨어요. 복지 측면에서 많은 신경을 써 주시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옆에 있던 여직원도 ‘잘 나가는’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직까지 정부에서 추진중인 지방 분권 정책은 피부로 와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회사가 위치해 있는 소프트웨어지원센터는 회사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요.”
조 사장은 대덕연구단지에서 큰 물적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심리적으로 직원들이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요람인 대덕’에서 근무한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부심에 대해 “회사를 옮길 상황이 되더라도 최우선적으로 연구단지내에서 움직이겠다”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그는 그러나 “지방 분권화로 산학 연계가 부각되고 있는데 일부 대학 교수들이 정치적 성향을 가져 실질적인 산학 연계를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지방 분권화가 되더라도 각종 학연과 지연 등 연줄을 끊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기자는 조자연사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바로 옆방의 입체음향 전문업체인 이머시스 사무실을 찾았다. 별도의 공간 없이 연구실 한 켠에 임시방편으로 책장을 세워 만든 사장실에서 김풍민 사장이 고개를 든다.
“지방 분권화가 되면 나름대로 파급효과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전시에서도 특화된 첨단 산업 정책을 우선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김 사장은 대전시가 IT·BT·CT 등 각종 첨단 산업의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는 점만 내세워 특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각 산업별로 주력 아이템을 선정,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즉 아이템이 정해지면 관련된 기업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방 분권화 정책도 어찌보면 ‘돈 낭비일 뿐’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김사장은 주변 대학을 활용해 인력을 양성하고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관의 정책이 무엇보다 아쉽다고 말했다.
김풍민 사장과의 얘기를 끝내고 둘러본 연구소에서는 최근 국내 메이저급 휴대폰 회사에 음향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막바지 기술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연구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곳 연구원들은 2개의 스피커를 이용하는 모바일 입체음향한 기술 개발에 한창이었다. 스피커가 어디 있는 지 모를 정도로 3차원 입체 음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이머시스 연구소의 김현석 연구소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모바일 입체 음향 기술 구현을 위해 8명의 연구인력들이 휴가도 반납한 채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있다고 전한다.
오후 6시가 다 될 즈음 발걸음을 돌려 대덕대학 본부 건물인 ‘정곡관’ 3층에 위치한 대전시첨단산업진흥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업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선양을 다녀 온 이후로 보안 관련 업체 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클러스터 구축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입주 기업들을 전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는 대전시첨단산업진흥재단 조태용 소프트웨어사업단장은 민간 기업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향후 대덕밸리 클러스터 활성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단장은 그러나 “지방 분권으로 인한 경제 파급력은 미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세계 경기가 나아진다면 기술력을 갖고 있는 대덕밸리 기업들이 접목시킬 수 있는 제품 시장은 커질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지자체들마다 10대 신성장동력 위주로 산업 발전 방향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방 분권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들이 코드를 어떻게 맞춰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조 단장은 “현재처럼 중앙 정부가 예산 권한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지역 특화 산업 육성 정책을 펴기에는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며 “예산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이양하지 않고서는 성공 여부가 희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벤처 붐 이후 최악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대덕밸리호. 지방 분권화 정책 시행에 앞서 기대보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짙게 배어나고 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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