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국력이다]삼성그룹-신경영 신화는 계속된다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이류, 삼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6월 신경영 선언 10주년을 기념해 신라호텔에서 계열사 사장단 50여 명과 가진 경영전략회의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 했던 말이다.

 이날 행사에서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사장단은 ‘앞으로 10년은 세계 1등만이 생존하는 환경으로 바뀐다’는 새로운 위기의식 아래 ‘제2 신경영’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신경영을 한 단계 높여 중단없이 추진하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양 위주 경영을 과감히 버리고 질 위주로 가자’는 신 경영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을 두고 ‘말기 암환자’라고 혹평했다.

 삼성은 이처럼 남들보다 한 발 앞선 변화와 개혁을 추구한 ‘신경영’ 덕분에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져 갔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도약 기회로 삼는 원동력이 됐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건희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는 삼성 신경영 전략은 지난 10년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삼성은 D램·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모니터 등 19개 세계 1등 제품과 휴대전화 애니콜을 세계 ‘톱3’로 끌어올리는 등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아울러 세계 34위(83억달러) 브랜드 기업으로 성장해 국가 이미지 상승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수출·생산·상장주식 시가총액 등에서 삼성의 국가경제 기여도는 30%에 육박한다. 삼성은 지난해 수출액 312억달러로 국가 전체 수출 가운데 20%를 차지했고 경상 국내총생산(GDP)에서 4분의 1 규모를 차지했다. 그룹 매출액은 92년 35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141조원으로 10년 동안 4배 가량 증가했다.

 그룹 재무구조도 크게 개선됐다.10년 전 12조6000억원에 달하던 순차입금은 지난해 2조6000억원으로 줄어들었고 부채비율은 93년 291%에서 지난해 68%로 낮아져 선진기업 재무 체질을 갖췄다.

 그러나, 이 회장은 “지금 잘나가기 때문에 과거와 단절하기 어렵고 자만하며 변신의 기회를 놓칠까 두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작 잘나가고 있다는데서 문제 제기를 시작, 앞으로 10년후를 대비할 수 있는 제2 신경영 비전을 만들었다. 삼성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즉 세계 초일류·초국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미다.그 동안 세계 일류·월드베스트 전략을 추진한 삼성이 초국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삼성은 새로운 기술과 시장 변화, 중국 급성장 등 경쟁구도 급변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앞으로 세계 생산·판매전략을 ‘초국적’ 관점에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삼성은 앞으로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변신하는 전략을 구체화할 전망이다. 북미·중국·일본·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현지 생산과 판매를 담당하는 국외 주요 거점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은 분명하다.

 제2 신경영을 선언한 삼성은 신경영을 시작할 당시 초심과 IMF 관리 체제 때와 같은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 미래에 대비하기로 했다.지난 5일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 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윤 부회장은 “지난달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통해 보면 우리 회사 제품력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소니처럼 새로운 시장과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할 수 있는 독창적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이 매출은 증가하고 있지만 이익률 하락, 납기지연 등으로 전반적으로 회사 분위기가 이완된 느낌”이라며 “초일류가 되기 위해선 위기의식속에 새로운 혁신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5∼10년 후에 대비한 핵심사업으로 생명과학·생활용 로봇사업·유비쿼터스 건강설비·반도체·소재부품·스마트 홈에 기반한 보안·네트워크 솔루션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삼성은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오는 2010년에는 매출 270조원을 올려 지난해 대비 1.9배 성장을 이루고 세전 이익은 2.1배로 늘어난 30조원을 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브랜드가치 상승과 병행해서는 세계 1등 제품 개수를 19개에서 50개로 늘리기로 했다.

 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먹여 살릴 신수종 사업 발굴과 추진에 대해 “세계 1등 제품을 50개로 늘리면 신수종 사업도 저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삼성은 △5∼10년 후를 대비한 글로벌 인재경영 △세계 1등 제품과 서 비스 경쟁력 확보 △미래 성장엔진 발굴을 통한 기회선점 경영 △사회친화적 경영과 세계 톱 브랜드가치 달성 등을 4대 핵심전략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가운데 ‘천재 육성론’은 삼성의 제2기 신경영의 키워드다. ‘한 명이 1000명,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천재급 인재를 키우기 위해 삼성은 매년 석·박사 인력 1000명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핵심인재 확보야말로 5∼10년 후를 주도할 성장엔진인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고 세계 일류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최우선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식에서다.

 ‘삼성 브랜드가치 700억달러 돌파’ 삼성이 제2의 신경영을 통해 그리는 2010년 모습이다.

◆제2기 신경영 키워드는 ‘인재경영’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려 미래의 캐시카우(돈을 벌어주는 사업)가 될 차세대 성장산업 선점’

 삼성의 제2기 신경영의 키워드다. 경쟁력의 핵심을 ‘경영의 품질’에서 ‘경영의 주체인 사람’으로 옮긴다는 의미다.

 2기 신경영의 4대 핵심 추진전략중에서도 ‘S급, A급 등 핵심우수인력을 확보하고 육성하는 인재경영 실천’을 가장 먼저 꼽았다. 삼성은 사실 꾸준히 인재경영을 부르짖어 왔다. 이건희 회장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5년, 10년후 명실상부한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조기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키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삼성이 인재경영을 향후 10년을 이끌 경영 키워드로 내세운 것은 세계 일류 기업들과의 경쟁하에서 성패가 핵심 인재 확보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이 원하는 인재는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고 해외 유수 기업에 근무하면서 글로벌 감각과 선진경영 감각도 겸비한 인물, 특히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경험과 실력을 갖춘 임원급 인재다.그동안 박사급 인력이나 MBA 스카우트 등 우수 인재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삼성이 여전히 인재에 목말라 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삼성은 이같은 인재 확보를 위해 우선 그룹내 교육시스템을 재정비할 방침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내부시스템을 정비하고 해외 인재 스카우트도 확대키로 했다. 계열사 사장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우수인재 유치가 되기 시작했으며, 일각에서는 내년 사장단 인사에서 외국인 사장이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삼성은 우수인재를 국내로 불러오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해외에 연구개발센터를 차릴 계획이다. 목적은 물론 우수인력 확보다. 생활환경과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인해 한국에 오기를 꺼리는 외국인들을 현지에서 스카우트해 활용하자는 전략이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 러시아·중국·인도·베트남 등 옛 사회주의권 과학기술 강국으로 손을 뻗친다는 구상이다. 자체 양성 또는 해외에서 스카우트한 글로벌 인재들로 하여금 미래 성장산업을 주도케해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보다 확고히 한다는게 삼성의 제2기 신경영의 핵심이다.

◆2기 신경영 삼성을 이끌 ‘삼성-CEO 7인방’ 

 신경영 10주년을 맞아 ‘질 경영’에서 ‘인재 경영’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삼성이 최근 삼성의 미래를 짊어질 수뇌부를 새로 구축했다.10년 전 ‘신경영’을 뿌리내리는 데 산파역을 했던 비서실 출신들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동시에 실력파 전문경영인들이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21세기 경영구도가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올해 초까지 삼성 방향타를 쥔 수뇌부는 삼성 전체 최고의사결정 협의기구인 삼성 구조조정위원회의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 배종렬 삼성물산 사장,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허태학 호텔신라 사장(현 삼성석유화학 사장) 등 5인방이었다.

 그러나, 삼성석유화학 사장 으로 자리를 옮긴 허사장이 빠지면서 CEO 3명이 새로 선발돼 위원회 구성원은 7명으로 늘어났다.새로 위원회에 참여한 CEO는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이윤우 삼성전자 다바이스솔루션네트워크 총괄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이다.

 이들 7인방은 비서실 출신과 계열사 출신 CEO가 조화를 이루면서 수뇌부가 보강된 모양세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국내외 경제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삼성호’ 항로를 결정하는 핵심 리더로 이건희 회장-구조본-계열사로 연결되는 삼각편대에서 중심을 이룬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