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연구·개발(R&D)허브 구축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각 지방 자치 단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 상암동에 건설될 디지털미디어센터(DMC)는 탁월한 입지 조건, 막대한 투자 등으로 일찌감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대덕밸리와 인천 송도신도시가 격돌의 중심에 서면서 각자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한 경쟁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일단 송도는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유리한 위치에 섰다. 인천시 내에서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영종도, 청라지구 등 입지 조건이 좋은 다른 지역 보다도 사업 진척 속도가 가장 빠른 송도 신도시로 외국인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반면 대덕밸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IT를 중심으로 한 인천 송도 신도시 조성계획은 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30여 년간 R&D 여건이 성숙된 대덕밸리를 동북아 R&D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지역간 충돌은 동북아 중심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정부의 방안 중 하나인 동북아 R&D 허브 구축 계획과는 배치된다는게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의 설명이다.
추진위 측은 ‘허브’라는 개념은 특정 지역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뜻이 아니며 유망 기술을 중심축으로 그 기술에 맞는 지역에 네크웍을 구성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지역적인 것은 2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배제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지역간 대립이 완전히 종식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정부의 사업 추진 계획이 나올때마다 특정 지역 소외론 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지역자치단체간 선의의 경쟁은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도를 넘어선 대립은 동북아 허브는 커녕 현재 지역 경제의 퇴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추진위는 일단 R&D 허브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텔레매틱스를 선정했다.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텔레매틱스 산업을 R&D 허브 구축의 첫번째 모델로 제시한 것이다. 엄청난 성장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 텔레매틱스 산업이 지역간 대립 없이 성공적인 동북아 R&D 허브 구축의 첫번째 사례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글로벌 IT기업을 잡아라
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의 중심에 IT가 있는 만큼 글로벌 IT기업의 국내 R&D 투자유치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 정부가 팔을 걷어부쳤다.
특히 정보통신부는 글로벌 IT기업의 국내 R&D 투자유치 사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국제협력관실을 대외협력 창구로 하고 정보통신정책국에서 구체적인 투자유치 정책을 마련, 진대제 장관과 간부들이 직접 국내 지사장들을 만나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8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이 한국에 최첨단 분야 R&D센터를 설치하기로 함으로써 첫 결실을 거뒀다. 방한한 크레이그 배럿 인텔 회장(CEO)은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지난 5월 노대통령의 방미기간동안 인텔 본사에서 노 대통령이 요청했던 최첨단 분야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R&D센터를 연내에 한국에 설치하겠다고 화답한 것이다.
인텔이 세계 각국에 다양한 R&D센터를 설치·운영중이지만 디지털 홈, 무선 등 최첨단 분야 연구개발센터를 두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인텔은 말레이시아나 대만에도 R&D센터를 설치했지만 PC관련 연구활동을 주로 하기 때문에 한국에 설치될 R&D센터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인텔의 최첨단 R&D센터는 우리 정부가 역점 추진키로 한 IT신성장 동력산업 분야”라며 “인텔 R&D센터 유치를 계기로 한국을 아시아의 R&D 허브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통부는 또한 국내 IT 산업을 주요 성장거점별로 분류하고 집적효과와 협업효과를 거둘 수 있는 IT 클러스터를 조성, 여기에 글로벌 IT기업의 R&D 센터를 유치해 투자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IT 클러스터로는 대덕연구단지·송도테크노밸리·상암동디지털미디어센터(DMC) 등에 몇 개의 클러스터가 추가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통부는 공청회를 거쳐 올해 안에 클러스터 맵을 작성하고 전후방 산업을 연결해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방안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적극적인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다우코닝·e베이·스미토모·BMW·HP· 3M 등 다국적기업의 CEO를 차례로 초청, 북핵문제 등 투자 우려 요인을 해소를 해소하고 해외순방시 유치 대상 기업의 본사도 방문키로 했다.
또 직접 외국인투자유치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일년에 두차례 주재, 투자환경 개선내용을 점검하고 투자유치 성공사례를 격려할 계획이다.
◆ 텔레매틱스 시범 추진 현황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자동차·통신 업체들은 이미 90년대 말 IT산업 발전과정에서 텔레매틱스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지 못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시속 100㎞ 이상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 안에서 끊어지지 않고 대용량의 메시지를 무선으로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 확보 문제와 텔레매틱스 장착때 자동차 가격의 상승 문제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텔레매틱스의 향후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당장 2년 후면 국내 시장만 8500억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현대·기아·GM대우·르노삼성자동차와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이 경쟁적으로 사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하반기 중에 그랜저XG·EF소나타·옵티마 리갈 등 중형차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에쿠스·오피러스 등 총 13개 차종에 텔레매틱스 단말기를 장착,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다. 그동안 SK텔레콤의 휴대전화기(외장형)를 이용한 서비스가 시장을 선점했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는 현대차가 본격적으로 텔레매틱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 판도가 급변할 조짐이다.
이에 대응해 SK는 내장형 단말기의 3분의 1 수준인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외장형 시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내장형 제품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에 외장형 제품으로 대세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자사의 이동전화 가입자가 1790만명을 넘기 때문에 일단 외장형 시장을 어느 정도 확보해 놓으면 현대차도 협력을 요청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쌍용차도 KTF와 제휴해 연말 시범 서비스에 이어 내년 상반기 내장형 자동차를 본격 생산할 계획이며 GM대우차도 대우차 시절의 실패를 거울 삼아 새로운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차세대 10대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는 R&D 허브 구축을 위한 시범 사업으로 선정하는 등 텔레매틱스를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해 나가기 위한 선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않다. 우선 정통·산자·건교·과기 등 각 부처와 기업들이 중구난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바람에 서비스 수준이 떨어지고 시장 활성화가 예상외로 더디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교통정보의 경우 서울·부산 등 대도시 지역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맡고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가, 국도는 건설교통부가 자체 목적에 따라 각각 수집하고 있다. 그나마 상호교류가 거의 안되는 데다 각 기업들이 만드는 전자지도 등 지리정보시스템(GIS)도 표준화가 안돼 단말기와 교통정보를 비롯한 각종 콘텐츠 간의 호환성이 떨어지는 형편이다.
비싼 단말기 가격과 사용료도 문제다. 내장형 텔레매틱스의 경우 단말기 가격이 200만∼500만원이나 되는 데다 월 사용료로 기본요금에 이동통신 통신료를 별도로 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만 해결된다면 향후 텔레매틱스 산업은 우리나라가 동북아 R&D허브 중심 국가로 도약하는데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정부와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조장은 기자 je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