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부터 경고음이 울렸던 벤처업계의 정책자금 상환 불능 사태가 뚜렷한 해결책없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면서 벤처 자금 대란이 우려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개별 기업들이 발행한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제외하더라도 벤처업계가 당장 내년 5월까지 갚아야 할 벤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 증권(CBO)만 4289억원이나 되지만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는 벤처업계는 속수무책이다.
특히 각종 정책자금과 보증기관을 통한 금융기관 대출자금도 수 십조에 달하고 기업들이 올해부터 원금만 매년 1조5000억원 이상씩 갚아 나가야 해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자금대란이 현실화할 전망이다.
서울 역삼동 소재 한 벤처기업 대표는 “자금 확보가 어려워 신기술 연구·개발 투자를 포기하는 마당에 원금상환은커녕 이자연체도 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리하고 싶어도 당장 회사 간판을 내리면 각종 금융기관 채무로 가족·친척들이 큰 고통을 받게되는 처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직접 돈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 조사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77개 벤처캐피털회사의 순자산 2조1100억원 중 약 20%에 달하는 4150억원이 잠재적인 부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기술신용보증기금의 한 관계자는 “지난 6월말까지 기술신보의 보증으로 빌린 돈(CLO) 320억원을 제대로 갚은 기업조차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벤처자금 대란은 이미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나 산하기관에서는 연도별로 벤처업계가 갚아야 할 돈에 대한 정확한 현황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5월 한 정부 고위 관계자가 “다가올 위험에 대비,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4개월동안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다른 자리로 옮겼다.
중소기업청의 한 관계자는 “걱정은 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며 “담당자 일부는 옷을 벗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