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만한 칩속에 화학공장 세운다

 머리카락 10만분의 1 크기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초미세 나노(Nano) 기술이 우리 일상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분자와 원자 차원의 극미세 기술로 마이크로(100만분의 1)수준에서 논의되던 과학이 최근 들어 원자 몇개 크기에 불과한 나노로 넘어가면서 그동안 예측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성질을 이용한 연구가 한창이다. 나노란 10억분의 1미터.

 나노기술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나노캡슐에 약물을 넣어 선택적으로 암세포만 제거하거나 손톱만한 칩 하나에 화학공장 하나를 지을 수 있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막연한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의약이나 화장품 분야에서 나노기술은 더이상 미래 꿈의 기술이 아니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방사선식품생명공학연구팀(팀장 변명우 박사).

 이곳에서는 방사선 조사 기술을 이용해 폴리페놀이나 폴리펩타이드,폴리사카라이드 등 천연화합물의 구조를 변화시켜 고순도·고농도의 천연화합물을 나노사이즈로 개발, 제품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다국적 화장품 회사인 한국콜마에 기술을 이전, 기존 제품과의 가격 차별화로 올해 매출 300억원대를 훌쩍 넘기는 개가를 올리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나노캡슐을 이용한 생체친화성 화장품 제조기술을 상용제품으로 내놓았다. 이 나노캡슐은 기존 제품보다 더 미세한 70㎚크기 이하로 만들어 피부 흡수력을 최대화한 데다 캡슐 표면을 코팅처리, 피부장애를 없애는 등 여성들이 겪는 피부 트러블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향후 나노입자에 지용성 활성성분을 주입, 비타민 A, C, E 등 미용성분뿐만 아니라 항암제 등 지용성 의약품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나노캡슐을 이용,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약효가 나타나는 신약 개발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정명애 박사 연구팀은 현재 원자력병원과 이화여대와 공동으로 ‘약물전달 유도 미사일’이란 나노캡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초미세화학공정시스템연구센터(CUPS,소장 우성일 화공과교수)에서는 또 고속 R&D와 대형 의료 장비 등을 머리카락 굵기인 미크론(1㎛=100만분의 1m)단위에서 하나의 칩 위에 구현하는 초미세화학공정(POC)과 칩 속의 화학공장(FOC)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중이다. 이 기술이 구현되면 앞으로 여성들은 향수병 대신 100여종의 원액이 들어있는 향수 조합기를 갖고 다니며 상황에 맞게 원하는 향을 즉각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ETRI 정명애 박사는 “나노는 일상생활에 너무 가까이 와 있어 더이상 특이한 기술 분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샴푸나 유산균, 자동차 도료 등에 나노기술이 적용될 만큼 나노의 범용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