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26)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카자흐스탄(하)

 카자흐스탄 인터넷청년봉사단의 프렌드쉽팀(팀장 조용윤)과 스펙트라팀(팀장 김성은)은 봉사활동 막바지에 소도시인 우슈토베와 딸띠꾸르간을 방문했다. 이곳은 그 전까지 머물던 카자흐스탄 제1의 도시 알마아타(카작어로는 알마티라고 함)와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랐다. 스탈린 통치시절(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 때문이다.

 이곳에선 고향에서 쫓겨나 강제이주당한 한인들의 한맺힌 사연이 8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여전히 뼈아픈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슈토베,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한맺힌 역사

 8월 11일 오전 8시. 인터넷 청년 봉사단원들은 강의용 집기와 기증용품을 2대의 봉고차에 나눠 싣고 알마티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소도시 ‘우슈토베’로 향했다. ‘스레드나야 쉬꼴라 이멘니 제르진스키(이하 제르진스키 중등학교, 우리나라의 중고교를 합친 개념)’의 학생들에게 인터넷 및 한국의 정보화 현황에 대해 강의하고 각종 정보통신 기기와 도서도 기증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점심 무렵에 도착한 단원들은 인 발렌찌나의 안내로 우선 고려인들의 최초 정착지에 남아있는 토굴 터를 둘러봤다. 카자흐스탄은 겨울이면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 실제로 많은 동포들이 시베리아를 거치며 매서운 추위와 굶주림을 못 견딘 많은 동포들이 이주과정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단원 박용관씨와 이소운씨는 “모두 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후손을 키워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슬픔도 잠시, 바쁜 일정을 의식한 단원들은 서둘러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알고보니 제르진스키 중등학교는 학교내에 학생수 대비 PC수가 턱없이 모자란 데다 평소에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강의시간엔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낸 플래시 동영상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학생들은 디지털 카메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셔터를 누르자마자 영상이 화면에 잡히는 것을 본 학생들 사이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의를 마치고 디지털 카메라를 기증하자 학생들은 뛸듯이 기뻐했다. 정보화로부터 소외된 계층은 이곳 우슈토베에도 적지 않았다.

 정보화에서 소외된 탓에 한국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고려인들이지만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 중에는 남다른 뿌리의식을 보여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학생은 “부모님들은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교재가 거의 없었어요. 대부분 고려일보를 보며 공부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모국어는 해외 각지로 흩어진 동포들이 문화적 동질성과 뿌리의식을 공유하게 해주는 가장 큰 매개다. 바로 그런 모국어를 잊지 않도록 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온 고려일보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딸띠꾸르간을 거쳐 다시 알마아타로- 미래를 기약하며

 우슈토베 일정을 바친 단원들은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근방의 또다른 소도시 딸띠꾸르간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챙겼다. 고단한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12일, 딸띠꾸르간에서 밤을 보낸 단원들은 아침 일찍 딸띠꾸르간 대학을 방문했다. 영어-한국어과 학생 16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강의를 하기로 돼 있었다.

 방학 중이라 대학 건물을 이용하는 것이 수월치 않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주선한 한국교육회관 입주예정 건물에서 강의를 했다. 인터넷 및 한국의 정보화 현황에 대한 강의가 이어지는 2시간여 동안 학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인터넷을 거의 모든 가정에서 쓴다구요 정말이에요’ ‘집에서 온라인으로 민원업무도 가능해요’ ‘인터넷으로 학위도 딸 수 있다는데…’ 등등 한국의 정보화에 대한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이제 한국이 전세계가 주목하는 정보화강국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정보화 후진국들에 대한 지원은 선심성, 일회성지원에서 벗어나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란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보격차 해소를 통해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국가간 문화적 이해도를 끌어올리며 한국 IT산업의 발전까지 도모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큰 수확인가.

 그날 저녁 알마아타로 되돌아온 단원들은 13일부터 19일 알마티를 떠나기 직전까지 키맵 대학, 고려인 청년회, 고려일보사, 한국교육원 등을 다시 방문해 강의와 홈페이지 구축 및 DB구축 등에 대해 논의했다. 봉사의 애프터서비스인 셈이다. 인터넷 청년봉사단원들의 카자흐스탄에서의 길고도 짧았던 봉사활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인터뷰-조용윤 프렌드쉽팀 팀장

 “서울에서 출발할 땐 굉장히 긴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활동을 하다보니 교육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네요.”

 조용윤 프렌드쉽 팀장(34)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체계적인 정보화 교육에 목 말라하는 모습을 보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제르진스키 중등학교와 딸띠꾸르간 외국어대 교사 및 알마아타 한국교육원에서조차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지원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조 팀장은 팀원들이 우슈토베를 방문해 교육한 것이 가장 인상깊었다며 “한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강제이주 당한 뒤 살았다는 토굴 터를 둘러보며 새삼 한인들의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됐다”고 한민족의 동질성을 내비쳤다.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봉사팀이 머무르는 동안 숙소로 사용하던 아파트의 이웃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놀기도 했으며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며 친분을 다지는 일에도 열심이었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간담을 서늘케 한 일도 있었다. “어느날 형사가 밤중에 들이닥친 겁니다. 일제 검문이 시작됐죠. 영문을 모르고 검문을 당한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똑같은 옷을 입은 8명의 장정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걸 이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신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조 팀장은 “내년에 이 곳을 방문하는 봉사단 팀원들이 우리를 이어 지원활동을 잘 펼쳐주기를 바란다”며 “현지에서 보고 배운 것을 내년 봉사팀에게 전해 보다 알찬 봉사활동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카자흐스탄의 정보화수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의 정보화수준은 각국 정보화 통계에 언급되지도 않을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PC보유대수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며 인터넷 호스트는 2001년 현재 1만1000여대, 인터넷사용자수 10만여명 수준이다. 이동전화가입자는 2000년 기준 19만7300명이다.

 여러 나라로부터 컴퓨터를 지원받아 최신형 제품들이 많지만 유지보수인력이 부족하고 기술력이 떨어져 사용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다. 누르삿과 투카시 및 카작텔레콤에서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대부분 모뎀을 이용하기 때문에 속도가 무척 느리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발맞춰 ‘COM & COM’ ‘Internet & I’ ‘모빌리닉’ ‘컴퓨터클럽’ 등 컴퓨터 잡지가 다수 발행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최근 들어 기업 민영화와 외자유치를 통해 IT산업 부흥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보화 지원업무확대를 위해 지난 6월에는 교통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위원회를 정보통신청으로 독립시켰다.

 한편 알마아타 시가는 LG전자와 삼성전자의 IT관련 제품 광고로 가득하다. 시내 전자제품 상가도 휴대폰, 디지털TV, PC, LCD모니터, 프린터 등 각종 정보통신제품이 수두룩하다. LG전자는 지난 96년말 공장을 설립, TV·세탁기·비디오 등을 연 50여만대씩 생산해 연매출 1억달러를 돌파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한국 브랜드 가전제품의 시장점유율은 전체시장의 7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카자흐스탄 통신망 현대화 사업을 위해 1240만달러의 EDCF차관을 제공한 상태. 오는 10월에는 정보통신부가 IT교육훈련센터를 캄보디아와 루마니아에 이어 세번째로 카자흐스탄에 개설할 예정이다. 또 KOTRA 주도로 중앙아시아 정보통신경제협력단을 결성,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CIS 국가를 방문할 계획이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