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권석철 하우리 사장(4)

 2001년 6월 하우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반도체 장비 업체로부터 구매 의사를 표명하는 연락을 받았다. 반도체 생산 장비가 펀러브 바이러스에 걸려 아무리 치료를 해도 계속 재감염된다는 것인데 하우리의 백신 제품으로 완치 가능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2위 반도체 장비제조업체에서 러브콜을 받은 우리는 앞뒤 잴 겨를도 없이 시연제품을 갖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문제가 심각했다. 생산된 반도체의 에러율을 체크하는 최첨단 생산장비가 감염됐는데 한번 치료하더라도 재부팅을 않는 한 계속 시스템을 재감염시키는 특징을 보였다. 반도체 생산 장비는 잠시라도 작동이 중단되면 반도체 제품의 에러율이 높아지고 엄청난 비용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스템을 자유롭게 켜거나 끌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들이 백신을 설치할 때 재부팅하지 않도록 설계된 바이로봇에 관심을 보여온 이유였다.

 그때부터 길고 긴 제품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 보니 기술적 우수함은 검증됐으나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의 작은 백신업체를 거래처로 신뢰하기는 어려웠고 당시엔 사후 지원도 문제였다. 백신의 특성상 도입후 계속된 기술지원이 보장돼야 하는데 해외 지사가 없는 하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냐는 문제제기로 인해 지루한 검토가 계속됐다.

 이때 상상도 못했던 호기가 다가왔다. 2001년 9월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님다(Nimada) 바이러스의 등장이었다. 세계적으로 하루만에 최소 100만대의 컴퓨터가 감염됐고 며칠새 그 피해는 약 830만대로 확산됐다. 손실액만 최소 5억9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바이러스였다. 그 업체 역시 피해를 입었다. 바이러스 발생시 신속하고 침착하게 치료 솔루션을 개발해 배포했던 하우리의 재빠른 사고 처리 능력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우리 제품은 님다라는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바이러스를 정확히 진단· 치료함으로써 결정적 신뢰를 얻었다. 결국 이들의 망설임은 확신으로 돌아섰고 5개월에 걸쳐 제품테스트가 완료됐다. 마침내 2001년 11월 KLA-Tencor Corporation의 한 부서가 백신공급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비록 일부 부서에만 공급된 것이지만 제품의 기술적 우월성을 검증받은 해외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미국 시장에 진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고무적이었다. 이 기업은 작은 문제점까지도 꼼꼼히 봐주는 하우리 미국 법인의 고객지원에 만족했고 현재는 타 부서에서도 구매를 검토중이다.

 하우리는 미국 수출건을 계기로 실리콘밸리에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에서 기업 틈새 시장을 중심으로 활발한 영업 활동을 전개해 실질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

 ◆ 권석철 하우리 사장 sckwon@haur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