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 외국인 매도, 증시자금 불안 등 ‘3대 악재’가 휩쓸고 간 증시가 폐허를 딛고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단기급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의 성격이 짙어 주가회복을 위한 본격적 움직임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다.
23일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2000억원을 웃도는 매도 공세를 펼치며 전날에 이어 이틀째 비관적인 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환율 급락이 체계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기보단 단기적 영향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증시자금 유입에 대한 정부의 다각적 의지도 전해지면서 3대 악재를 둘러싼 비관적 형국은 상당부분 완화되는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경기 방어주, 내수 우량주, 원화가치 상승 수혜주, 배당 유망주 등으로 주가 긍정성이 확대되며 폭넓은 반등세가 펼쳐졌다.
◇외국인 매도세 당분간 지속될 듯=최근 상승랠리가 사실상 외국인들에 의해 주도돼왔던만큼 외국인들의 매도 물량 확대는 증시 비관성을 높이는 중대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난 22일 620억원 순매도에서 23일 매도 보폭을 3배가량 넓힌 외국인들의 행보를 놓고, 당분간 상당폭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필호 신흥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삼성전자를 위시한 IT주가 수출이란 특성으로 모두 묶이기 때문에 우리 IT산업은 원천적으로 환율에 약할 수 밖에 없다”며 “외국인들이 대량 매도 공세로 밀어붙일 경우, 이 문제는 환율 문제 자체보다 한국증시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만증시 완전 개방도 환율하락으로 빚어진 한국에서의 외국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외국인 매도강도 진정이 증시 안정화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통신, 인터넷, 내수호조 가전업종에 당분간 관심을=이날 KT·SK텔레콤 등 통신 대표주들은 전날 상대적으로 작은 하락률에 이어 상승반전하며 지수 안전판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특히 KT는 교환사채(EB) 물량을 포함한 외화부채가 23억달러에 달하는 현실에서 원화가치 상승이 오히려 덕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이 됐다. 대우증권 양성욱 연구원은 “KT에 대한 펀드수익률이 최근 10%를 웃돈 것에 비해 삼성전자에 대한 펀드 수익률은 단기적으로 10% 이상 빠진 것이 현재 종목주가의 특성을 가장 극명히 나타낸다”며 “시장 분위기가 절박해질수록 KT·SK텔레콤에 대한 상대적 투자 매력은 더 뚜렷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수출 실적에 직격탄을 맞을 것처럼 인식되는 전기·전자업종도 실질적인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수출대금 결제가 달러화로 이뤄지지만, 원자재 수입 또한 달러화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안정적인 내수기반을 가진 대형업체일수록 피해 규모는 더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이다. LG전자가 환율 급락속에서도 외국계 증권사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외국인 순매수세가 지속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이와 함께 인터넷주들도 환율, 외국인 매매동향 등에서 상대적으로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날 대부분 상승반전하며 코스닥시장의 기둥역할을 해냈다.
◇수출주 비관적 상황 아니다=굿모닝신한증권 최창호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수출회복 등의 힘으로 최근 5개월여간 쉼없이 달려온 것은 생각 않고, 환율급락에 따라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불안심리만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양상”이라며 수출 주력 업종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관론을 경계했다.
그는 “수출 모멘텀이 내수경기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져야하는데 그렇치 못한 것이 우리경제의 난관”이라며 “수출이 안좋아질 것이므로 내수, 경기 방어주로 돌아서야한다는 이분법적 시각은 적절치 못하다”고 덧붙였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